무척 매워도 시집살이보다 덜 맵다던 고추
무척 매워도 시집살이보다 덜 맵다던 고추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6.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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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109]
▲ 고추 꽃. [송홍선]

고추는 한해살이풀이다. 흰빛의 꽃이 피고 붉은빛의 열매를 맺는다. 매운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고추는 한자로 당초(唐椒)라고도 쓰며, 조선시대에는 고초(苦草)로 표기하였다. 고(苦)자는 맵다는 뜻이 아니라 쓰다는 의미가 있지만 고추의 매운맛을 쓴맛에 비유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덜 익은 열매의 풋고추는 상추의 잎과 함께 우리가 즐겨 먹는 채소이다. 채소용 고추는 날것으로 고추장, 된장에 찍어 먹으며, 반으로 쪼개어 속에 두부, 쇠고기 등을 버무려 넣어서 전을 만드는데 쓰기도 하고, 통째로 구멍을 뚫어 젓국에 절여 놓았다가 겨울철의 밑반찬으로 사용하였다.

고추 잎은 어린 열매와 함께 졸이거나 데쳐서 나물로 이용하고, 열매는 여러 요리의 향신료로 이용한다.

싱싱한 홍고추는 나물의 조미료로 즐겨 쓰고 있다. 말린 건고추는 마늘과 더불어 김장의 중요한 양념으로서 김장시장의 중요한 품목이다. 또한 건고추는 가루를 내서 고추장을 담그는데도 이용한다. 특히 초와 어울린 초고추장은 육회와 생선회의 양념장으로 중요하게 이용하고 있다.

붉은빛의 고추는 그 쓰임으로 보아 벽사(辟邪)의 뜻이 있다. 즉 민간에서 장을 담그고 나서 새끼에 빨간 고추와 숯을 꿰어서 독에 둘러놓거나 고추를 독 속에 집어넣는 것은 장맛을 나쁘게 만드는 잡귀를 막으려는 것이다.

경북 동해안지방의 별신굿에서 굿상에 소금 1접시, 물 3그릇에 빨간 고추와 숯을 띄워 놓는 것도 그 의미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 고추 재배. [송홍선]

또한 고추 열매는 그 생김새가 남아의 생식기와 비슷하므로 태몽으로 고추의 꿈을 꾸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신이 있다.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아들을 낳으면 왼새끼 금줄에 고추와 숯을 꿰어 대문 위에다 걸어 놓는데, 이것은 남아의 생식기가 고추와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고추의 붉은빛이 가진 벽사의 기능 때문에 잡귀나 잡인의 출입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데서 비롯되었다.

뿐만 아니라 민간요법으로는 감기에 걸렸을 때 고추감주라고 하여 감주에 고춧가루를 넣거나 마시기도 하며 더러는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신다.

한편 고추는 그 특유의 매운맛 때문에 시집살이의 고달픔과 비유돼 노래의 좋은 소재가 되기도 했다. 경북 경산지방의 민요 가운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시집살이 개집살이/ 앞 밭에는 당초심고/ 뒷밭에는 고초심어/ 고초 당초 맵다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경북지방 민요>

고추의 재배역사는 중남미에서 오래 전부터 재배하던 것이 1493년 콜럼버스에 의하여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17세기에 동양에 소개되었다. 16세기에 중국에서 발간된 ‘본초강목’에는 고추에 관한 언급이 없으며, 일본의 ‘초목육부경종법’에는 1542년 포르투갈 사람이 고추를 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에는 ‘지봉유설’에 고추가 일본에서 전래되어 왜개자(倭芥子)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을 거쳐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임진왜란 때에 왜병이 우리 한민족을 독한 고추로 독살하려고 가져왔으나 오히려 한민족은 고추를 즐겼다는 설도 있다.

한편 고추장의 등장은 한반도 사람의 식생활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고추는 붉은빛이 잡귀를 막아주는 것으로 믿는데서 벽사를 상징하고 있다. 고추의 모양은 남아의 생식기, 붉은빛은 열정, 매운맛은 인내를 표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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