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가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노사가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 이태향 객원기자
  • 승인 2010.07.06 1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대병원 하청 청소미화업체 노조분회장 이영분 씨
▲ 이영분 민들레노조 분회장   ⓒ이태향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들 하지만 마대자루를 쥐는 순간 천하게 여겨지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라는 교육을 받지만, 과연 자부심은 어느 때 생기는 것일까요? 인권을 존중받지 못 하는데....... ‘인정’받을 때라야 자부심도 생기는 것이겠지요.
모두가 의사가 되고 판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청결이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되지요. 그렇다면 청소하는 직업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꼭 필요한 일일 테고요. 사회에 ‘유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하는 사람이 사회 일원으로서 존중받아야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겠지요. 지식만이 존중받는 사회는 치우쳐져 있는 사회이고 건강하지 못 한 사회 아닐까요?”

서울대병원 하청 청소미화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로 구성된 민들레분회에서 분회장을 맡고 있는 이영분 씨(55세, 서울 미아동)를 만났다.

노조가 결성되면 환경도 태도도 변한다

서울대병원에서 청소노동을 하게 된 지는 만 2년 3개월이 된다.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대학 다니는 아들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게 되었다는 이영분 분회장은 작년 5월, 노조가 결성될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 170명이 노조에 가입했어요. 전체 노동자의 대부분이었죠. 노조가 결성된다고 해서 대단한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환경이 변할 것이라는 기대는 했지요.”

실지로 노조가 만들어지고 나자 그전과 비교해 비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일은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노조가 용역업체와 단체교섭을 시도할 때 원청인 병원측에서 용역업체를 잡도리해서 중간관리자인 반장에게 악역을 떠맡기는 행태를 보이는 것을 보고서는 지능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섭단체가 도깨비방망이는 아닙니다. 지금 현재 공공노조의 지원을 받으면서 교섭을 하고 있지만 언제 어느 때 교섭이 실패하게 될 지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긴 시간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노조는 노동자가 의지할 울타리

노조 설립 후 무엇이 변했는지 물어보았다.

“우선, 울타리가 생겼다고 봅니다. 그전에는 고아와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의지할 데가 있는 거지요. 그래서 용역업체가 일방적으로 노동자를 농단하는 일은 없어진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청소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50~60대의 여성들은 환경이 변화하는 것이나 간부들의 눈 밖에 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 부당한 지시를 받을 때도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하지만 그네들이라고 생각이 없을 리는 없다.

비단 서울대병원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공공시설이라고 생각한 그곳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해 갖게 된 상처가 더 컸다고 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청소하는 사람은 병실 침상 아래만 담당하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해야 할 일의 범위를 한정짓지 않고 침대 위를 치우고 매트를 닦게 하는데, 이건 조무사가 하는 일이거든요. 그러면서 조무사의 수를 줄인다면 이것은 부당한 일이지요.”

MRI실에서 일하던 사람이 C형 간염에 걸린 적이 있었다. 잠복기가 있는 질병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경과한 후에 증세가 나타났고, 치료비는 회사에서 나왔지만 퇴사를 권유받았다고 한다.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던 사람에게, 권리가 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던 사람에게 회사가 내리는 결정은 이런 식이었던 것이다.

“법정노동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것은 인격에 대한 모욕입니다.”

“법정노동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것은 인격에 대한 모욕입니다. 저 자신 불과 1년 전만 해도 법정노동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6시에 일을 시작하기 위해 새벽 5시가 되기 전에 버스를 타고 오는 일과였지만 몸이 아파 침을 맞으면서도 휴가 한번 쓸 수 없었습니다.
힘이 없는 사람은 혼자서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고 일어설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분회장은 표정이나 목소리도 당당했으며 주장하는 논리도 정연했다.
▲ 한 평도 되지 않은 청소미화원들의 휴게실   ⓒ이태향

“지금 현재 청소노동자를 위한 휴게공간이 따로 없습니다. 회사에서 점심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데 식사를 할 공간 뿐 아니라 식사를 하는 시간조차 주어져 있지 않아서 항시 대기상태로 밥을 먹게 됩니다.”

이 분회장은 휴게 공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고 말한다.

“보이는 곳이나 보이지 않는 곳이 모두 깨끗해야 건강한 사회 아니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제를 덮어놓기만 하면 그 문제는 결국 사회를 병들게 만들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건강한 사회

소설 <해리 포터>에는 호그와트라는 마법학교가 나온다. 웅장한 건물은 늘 정돈되어 있고 원할 때는 언제라도 환상적인 음식을 지팡이 하나로 불러낼 수 있다. 하지만 마법사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지하의 공간에서는 집요정들이 끊임없이 요리를 하고, 마법사들이 잠자는 시간에는 청소를 한다. 이 판타지 소설이 은유하는 원관념은 매우 현실적이다.

이 분회장은 청소하는 일의 유익함과 절실함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역설한다.
“노조가 생겼다고 곧바로 피부에 와 닿게 복지정책이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노동자들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된다면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 분회장은 노동이 제대로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갖는지에 대해 강조한다. 자식들에게도 나의 이익을 쌓으려 노력하기보다는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이웃이 건강해야 나도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어린아이들과 얘기할 때는 반드시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한다. 그래야 엄마 등에 업힌 아이라도 ‘나를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21세기를 정보와 첨단기술의 시대라고들 한다. 육체적인 노동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논리는 빛을 바랜 지 오래다.
하지만 모두가 기피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흘리고 있는 구슬진 땀과 육체노동의 고마움을 우리는 너무 쉽게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