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많은 강촌과 치열한 삶의 나루터, 잠실도
인정 많은 강촌과 치열한 삶의 나루터, 잠실도
  • 박상건 섬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0.07.07 17: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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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의 ‘한강 섬을 걷다’ 19] - 잠실도

잠실(蠶室)은 누에를 기르는 지역이란 뜻이다. 누에는 하늘이 내린 벌레라고 해서 천충(天蟲)이라고 불리며 신성한 벌레로 대우받았던 조선조에서는 임금이 양잠업을 직접 관장할 정도였다.

잠실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세종 때 왕명으로 이 지역에 뽕나무를 심은 데 유래한다. 한유성(1908-1994,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 송파산대놀이 인간문화재)의 구술에 따라 집필된 《서울민속대관 6편》(구전설화편, 1994, 서울시)에는 당시 서울에 한강 남쪽에는 서초구 반포동의 잠실리(현재 잠원동)와 송파구 석촌호수 부근의 잠실리(현재 잠실동) 등 두 개의 잠실 리가 있었다고 한다. 

▲ 북한산에서 내려다 본 잠실. ⓒ박상건

서초구 잠원동은 한양의 풍수지리상 남산이 누에머리를 닮았다 하여 잠두봉으로 불렸다. 이곳 누에에 뽕을 먹여 지기(地氣)를 살리기 위해 많은 뽕나무를 심고 양잠을 장려했다.

송파구 잠실동은 조선 세종 때 백성들에게 양잠을 장려하기 위하여 지금의 서대문구 연희동 쪽에 있던 서잠실과 함께 설치한 동잠실에 해당되는 마을이다. 조선시대 때는 잠실마다 실을 뽑아서 승정원에게 바치게 하고 그 정교함과 수량에 따라 상을 주가나 벌을 내리기도 했다. 그래서 잠실에는 양잠을 장려하기 위하여 잠실도회(蠶室都會)를 설치했다.

잠실과 깊은 연관이 있는 지금의 석촌 호수는 송파 나루터가 있던 곳인데 고려와 조선왕조에 이르는 1천 년 동안 양잠을 중심으로 한성, 충청도, 경상도로 이어지는 중요한 상업 교통로였다. 당시 송파장은 조선시대 15대 장터 중 하나로 전국 각 지방의 생산물이 모이는 중심지로 5일장이 아닌 상설점포가 형성된 중요한 장터였으며 지금은 그곳에 가락시장이 자리하고 있어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변화무쌍했던 잠실의 행정구역

잠실동은 유난히 행정구역이 많이 변경되었다. 조선시대는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 일제강점기 때인 1914년에는 경기도 고양군 독도면(조선총독부령 제 111호)으로 편입되어 잠실리가 되었다. 광복 후 1949년에는 서울특별시가 확장됨에 따라 고양군 독도면 전부가 서울시로 편입(대통령령 제 159호)되었고 잠실동은 서울시 성동구에 속했다.

이후 한강개발사업에 의해 1971년 잠실동은 신천동과 함께 한강이남 지역 육지와 연결되었고, 강남지역 개발과 인구증가에 따라 1975년 성동구로부터 강남구가 분리 신설(대통령령 제 7816호)되었다. 1979년 강동구가 신설(대통령령 제 9630호)되어 이에 속했다가 1988년 강동구에서 송파구가 분리 신설(대통령령 제 12367호)되어 현재 송파구 잠실동이다.

▲ 잠실 가족쉼터. ⓒ박상건

개발 이전 잠실도에는 새내(신천), 잠실, 부렴마을(부리도) 등 3개의 마을로 구성되었다. 마을사람들은 갖가지 음식을 준비해 놀이와 축제를 즐겼다. 인정이 넘치는 이들 마을은 아름다운 이웃사촌이었다. 각 마을끼리는 안마당 넘나들듯 공동체 문화를 유지하며 서로서로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1960년대 개발 이전에 잠실지구 빛바랜 사진 속에는 한강이 지금의 잠실지구 앞으로 흐르는 한강과 아파트가 들어선 신천 뒤편에 한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속에서 잠실도는 고 꽤 큰 마을로 구성된 섬이었다. 신천 뒤편으로 흐르는 한강 한 쪽에 있는 거대한 호수가 지금의 석촌 호수이다.

또 새내마을에는 한강 중지도 노들섬처럼 물맛이 매우 좋은 우물이 있었다. 체한 사람에게 효험이 있었다고 알려져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한강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봄에 우물을 청소했고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이 던져놓고 간 동전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기도 했다.

추억과 삶의 노고가 배인 송파, 부렴, 신천 나루터

송파구 구정자료에 따르면, 특히 송파나루터, 부렴마을 나루터, 신천나루터는 서민들의 고단함과 열정이 녹아 있은 생생한 삶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정겨운 나루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당시 사진 자료에는 마을 체육대회, 장례, 모내기, 양수기 설치 장면 등 여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겨운 장면들이 흑색사진으로 남아 있다.

당시 새내마을은 100여 가구, 부렴마을 50여 가구, 잠실마을은 30여 가구가 있었다. 부리섬은 잠실과 백사장을 사이에 두고 연결돼 있었다. 강과 모래섬으로 이웃한 이들 섬사람들은 그렇게 개발 이전까지 인정 많은 공동체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1971년 잠실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 기공식 및 하중도 물막이 공사 사진 등이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하면서 잠실도는 변모를 시작한다.

2008년 송파구가 발행하는 ‘구정소식’ 8~9면에 걸쳐 실린 “송파 옛모습~그 땐 그랬다…”라는 제목의 자료에 따르면,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고, 탄천에서 고기잡이 하고, 문화재 위에서 고추 말리던 시절이 흑백추억으로 남아 있다. 나무다리 만들어 탄천을 건너고, 양수기로 한강물 퍼 올려 농사짓고, 삼륜자동차 한 대면 부러울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하루 세끼 먹는 것조차 호사스런 시절이었다.

숯 만들던 탄천은 여전히 강태공들의 안식처

잠실도 옆에 있는 탄천은 지금도 강태공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물새들도 여유롭게 노닌다. 강남구와 송파를 가르는 개천인 탄천은 바로 한강으로 연결돼 서울의 젓줄로 하나가 된다. 탄천(炭川)은 우리말로 ‘숯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하천이 지나는 지역에 따라 장장포, 검내, 험천 등으로 불리어졌다. 

▲ 잠실탄천의 강태공들. ⓒ박상건

한유성에 따르면, 탄천은 경기도 용인군 부석면 중리 석행산에서 발원해서, 용인 서쪽에 이르러 장장포라고 부르고, 다시 광주산을 지나 꺾이면서 북쪽으로 흘러 광주군 남석면에 이르러 기우제를 지내는 하천을 검내, 또는 험천으로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강원도 등지에서 목재와 땔감을 한강을 통해 싣고 와서 뚝섬에서 부리고, 이걸 가지고 숯을 만든 곳이 바로 탄천 부근이었다. 이 때문에 개천물이 검게 변했다고 해서 탄천 또는 검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잠실도와 이어졌던 송파강과 부리도의 추억

아무튼 시대가 변하면서, 그리고 산업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잠실과 부리도도 육지로 변모한다. 일명 한강 공유수면 매립 사업. 지금의 신천역 남쪽으로 흐르던 송파강을 메워 잠실도를 75만평의 육지로 만들어 당시의 잠실 북쪽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도시계획으로 340만 평에 이르는 잠실지구 종합개발계획 사업이 추진돼 잠실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변해 강남의 새로운 주거개발지로 변했다.

당시의 잠실도 사람들 중 새내마을 사람들은 토지 보상을 받고 이주하여 지금의 신천역 새마을 시장 부근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그래서 새내마을의 뜻인 ‘신천’으로 계속 부르고 있다. 3년 뒤인 1976년, 잠실주공아파트 단지와 시영아파트 등 대단위 아파트가 조성되면서 원주민들은 외지인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또 다시 성남 하남 등 외곽으로 뿔뿔이 흩어져 갔다.

2호선 신천역 사거리에서 한강 쪽으로 들어선 잠실 1, 2, 5단지는 새내마을과 잠실마을이다. 잠실 7동, 정신여중, 아시아공원 근처는 당시 부리섬의 부렴마을에 해당한다. 송파강 자리에는 롯데월드가 들어서 있다. 탄천 자리에는 잠실종합운동장이 자리 잡고 있다.

숱한 개발과 그 변화의 몸부림을 몸소 겪으며 살아온 잠실도 사람들이지만 최근까지도 향우회를 운영하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그때 그 끈끈한 인정만은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한강처럼 유유히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순박한 고향정서를 되새기며 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잠실도의 역사는 훈훈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던가.

강가의 풀잎처럼 흔들리는 5일장 아우성과 삶의 향기들

한강 시민공원 잠실지구에 나가보면 잠실도와 부리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듬고 흘러가는 한강 물줄기를 거슬러가는 작은 피라미 떼들과 조우한다. 21세기의 피라미들이 그 시절 삶과 향기 속으로 아련한 추억의 유영을 즐긴다. 섬사람들의 후예들인 아이들이 그 피라미들을 보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웃는다. 그 장난기 머금은 웃음 속에서 강가 풀잎이며 나무며 5일장의 아우성들이 한데 섞이어 햇살에 눈부시다. 문득 실개천 휘돌아 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울음 운다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가 강바람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정지용, ‘향수’ 전문

정지용 시인은 충북 옥천에서 출생해 잠실도 맞은 편 언덕배기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모교의 교사를 지냈다.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내고.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킨 정지용의 ‘향수’는 그의 대표작이다.

그가 태어난 옥천 생가 앞에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고 옛 잠실도의 실개천도 그의 눈 앞에서 흘러갔다. 잠실의 실개천을 보며 고향을 실개천을 그리워했던 정지용처럼 우리도 잠실의 흐름 속에서 정겨운 시적 상상력을 건져 올릴 수 있을 것이다.

▲ 잠실도 달리기 모습. ⓒ박상건

유달리 공동체 문화가 잘 형성돼 있던 잠실도 사람들은 그렇게 “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었고,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는 그리움의 마음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잠실도 부리도를 오가던 그 풀등 그리고 탄천가에서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지금 잠실도에서 변하지 않고 흐르는 것은 바로 그런 추억 속에서 마음으로, 마음으로 흐르고 있는 자연주의와 휴머니즘의 흔적이다.

잠실수중보 물고기길과 자연학습장

오늘은 한번 잠실도로 훌쩍 떠나보자. 홀로도 좋고 연인과도 좋다. 그리고 가족나들이 장소로도 제격이다. 추억의 앨범을 넘기듯이 한강의 흐름 속에서 과거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건지며 소통해보자.

현재 한강 잠실도에는 ‘잠실수중보 물고기길’이 있다. 아이들과 체험학습 코스로도 훌륭하다. 1986년 한강종합개발로 만들어진 잠실 수중보는 계단이 높아 도약력이 약한 물고기들이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고기길을 폭 4.0m, 길이 228m 규모로 만들어 시민과 학생들이 산란기 때 물고기들이 떼 지어 올라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자연학습장이 있다. 또한 어도 주변에 수중식물 섬(물고기 휴식처), 바람개비, 산책로 등 테마공원으로 조성해 생태학습장으로 제격이다.

또 잠실 한강공원 자연학습장은 할미꽃, 노루오줌, 며느리배꽃 등 우리나라의 토종꽃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규모도 제법 커서 구획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좋은 한강변에서 손꼽히는 포토포인트이기도 하다. 또한 자연학습장에 2층 원두막을 만들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 잠실도로 가는 길

1. 버스로 가는 길
- 성내역(900m) : 3312, 3316, 3412, 361
- 잠실역(800m) : 3312, 3411, 3412, 9202, 9203, 9403
- 잠실역(마을버스) : 115-5, 1007, 1007-1, 1009
- 신천역(700m) : 301, 360, 362, 730, 3217, 3218, 3312, 3411, 3412, 3414, 3415, 3422
2. 지하철로 가는 길
- 2호선 성내역 3, 4번 출구(900m) : 성내역나들목(장미아파트 한강접근보도) 이용
- 2, 8호선 잠실역 5번 출구 (800m) : 잠실나들목(잠실지구사무소 앞 한강접근보도) 이용
- 2호선 신천역 7번 출구(700m) : 석촌나들목(수영장 앞 한강접근보도) 이용
3. 승용차로 가는 길
- 올림픽도로 하일IC방면 이용할 경우: 청담대교를 지나 900m 지점 잠실종합운동장 방향으로 진입하여 신천나들목(왼쪽 지하차도) 이용
- 올림픽도로 공항방면 이용할 경우: 잠실철교 지나 190m 지점에서 잠실역 방향으로 진입 후 540m 지점의 공원진입로 이용
- 잠실대교를 지나 1,500m 지점 공원로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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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 2010-07-08 13:53:01
[한강 섬을 걷다] 기사를 읽으면 매일 출퇴근 하며 그냥 스치는 한강에 자잘하고 유서깊은 역사와 일화들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잠실에 강촌이 있었네요. 한강 근처 살면서 이런 추억의 삶터가 있었는 줄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글 재밌게 읽고 갑니다. 주말에는 잠실나루에 가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