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문화의 개척지, 신촌'전 개최
'청년 문화의 개척지, 신촌'전 개최
  • 김진희 기자
  • 승인 2018.08.2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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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의 지역사(地域史)와 신촌을 통해 유입된 새로운 문화 조망

 서울역사박물관은 청년문화의 중심지이자 서울의 중요한 부도심 중 하나인 신촌을 재조명하는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 전시를 8월 22일(수)부터 10월 21일(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촌 지역의 공간 변화와 인문지리적, 사회문화적 특성을 고찰하고 근대학문, 서구문물, 민주화운동, 대안예술 등 신촌을 통해 유입되었거나 시작된 새로운 문화를 살펴 볼 예정이다.

 신촌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조선시대 이후이다. 조선 건국 당시 무악산(현재의 안산) 지금의 신촌 일대는 유학자이자 풍수지리가였던 하륜(河倫)이 새로운 수도로 강력하게 주장한 지역으로, 이때부터 ‘새터말(新村)’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1917년 연희전문대학과 1935년 이화여자전문학교가 이전한 이후 신촌은 대학촌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서강대학교, 추계예술대학교, 명지대학교 등 인근의 크고 작은 대학이 자리 잡았는데 대학촌에 모인 청년들은 신촌의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1970년대 신촌 독수리다방. 손영득 기증작.
1970년대 신촌 독수리다방. 손영득 기증작.

 1960년대부터 신촌은 문인예술가들에 의해 빠리다방, 빅토리아다방, 독수리다방 등이 새로운 아지트로 주목받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문인들 간의 만남, 원고 청탁, 원고료 지불, 필자 추천 등 모든 활동이 이루어졌다. 또한 문인 뿐만 아니라 연극,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결합하여 연극공연, 전시회 등을 열기도 하였다.

 1980년대는 카페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 공연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신촌의 라이브 카페는 1990년대 들어 변화되기 시작해 록카페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공간으로 변화하여 신촌을 벗어나 전국 각지로 빠르게 확산되어 갔다.

 한편, 1970~90년 격동기에 신촌은 사회변혁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4·19 혁명 이후 이어진 한일협정반대, 베트남파병반대, 학원민주화를 외치는 크고 작은 시위에서 대학생들은 권력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주체로서 역할을 하게 되고 신촌은 민주화운동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현재 신촌의 새로운 문화주체는 또다시 청년이다. 젊고 창의적인 청년들이 서대문구청에서 진행하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다시 신촌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청년들은 지역민들과 협업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활용해 신촌다움을 부활시키고 청년문화의 핵심지로 재건하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 토, 일, 공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자세한 정보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seoul.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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