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도라지를 즐겨 먹었다
한민족은 도라지를 즐겨 먹었다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07.10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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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18]

도라지는 동아시아의 한반도와 중국과 일본의 이용방법이 약간 다르다. 중국 사람들은 한민족처럼 도라지를 식용하더라도 일상적으로 즐겨 먹지 않는다. 원혼을 상징하는 전설이 많기 때문인지 일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한민족은 밥상의 보약처럼 도라지를 식용으로 즐겨 먹고 있다. 때문인지 도라지는 한민족의 생활과 아주 밀접해졌다. 거기에다 민요 ‘도라지타령’이 널이 알려지면서 우리 민족과 더욱 친근해진 것 같다. 말이 나왔으니 노랫말이나 적어보면서 흥얼거려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 도라지. ⓒ송홍선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 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로 반실만 되누나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어혀라 난다 지화자가 좋다
          네가 내 간장을
          스리살살 다 녹인다.

         -경기도 민요의 ‘도라지타령’-


한민족은 예로부터 도라지를 식용으로도 많이 이용했다. 18세기 중엽의 ‘산림경제’에는 도라지에 양념을 발라서 굽는 방법으로 이른 봄에 큰 도라지를 골라서 쌀뜨물에 담가 껍질과 상한 것을 제거한 다음 물에 삶아 쓴맛을 빼고 꿀을 섞어 약한 불에 졸였다가 말려서 먹는 도라지정과가 소개돼 있다.

또한 19세기 말엽의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도라지를 이용한 나물조리법이 설명이 있고, ‘진연의괘(進宴儀軌)’와 ‘진찬의괘(進饌儀軌)’에는 조선시대의 궁중연회 때 도라지가 이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옛날에는 즙이나 몇 가지의 곡물 등을 도라지와 혼합해 미음을 만들어 먹었음은 물론 고기와 함께 계란 등을 섞어 유탕(油湯)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특히 뿌리를 말린 것은 고사리나물 등과 같이 제를 지낼 때에 빠지지 않았다.

▲ 도라지. ⓒ송홍선

게다가 도라지는 구황식량으로도 유명했다. 도라지는 충분히 삶아서 주머니에 넣고 물에 담가 발로 밟아주면 쓴맛이 빠지므로, 이를 밥에 섞어서 흉년의 대용식량으로 먹었던 것이다. 16세기 중엽의 ‘구황절요(救荒折要)’에는 도라지로 장을 담갔다는 기록이 있다.

도라지는 약용으로도 널리 쓰였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은 ‘도라지가 ‘맛이 맵고 온화하며 독이 약간 있으며, 2~8월에 뿌리를 캐어 햇볕에 말린 것은 인후통을 잘 다스린다.’고 기록했다. ‘동의보감’은 ‘성질이 약간 차고 맛은 맵고 쓰며 약간 독이 있다. 허파, 목, 코, 가슴의 병을 다스리고 벌레의 독을 내린다.’고 기록했다.

현재 한방이나 민간에서는 기침, 감기, 냉병, 부인병, 편도선염, 기관지염, 이질, 위산과다, 보혈 등에 다른 약재와 더불어 처방해 쓰고 있다. 도라지의 잎은 발이 부르튼데 유용하며, 도라지와 수탉을 삶아 먹으면 대하증이 치료된단다. 뿐만 아니라 치통과 설사 때에는 도라지 뿌리의 껍질을 벗기고 기름에 지져 먹으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도라지. ⓒ송홍선

도라지의 이름은 약초를 캐는 청년을 사랑하다 죽은 도라지 처녀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이다. 옛날 어느 고을의 도라지 처녀는 약초를 캐는 청년을 사랑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렸다. 이러한 사정도 모르는 부모는 사윗감을 박 서방의 아들로 정해놓고 혼인날까지 받았다. 도라지 처녀는 점점 수척해졌고 결국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유언대로 뒷산 길가에 시신을 묻어 주었다. 처녀의 무덤가에서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도라지라고 불렀다.

한편 도라지의 꽃봉오리는 서양에서 풍선을 뜻한다. 도라지의 꽃은 종을 의미한다. 꽃말은 상냥하고 따뜻함, 기품, 품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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