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이면서 인간이 만든 최초의 옷 재료-무화과
과수이면서 인간이 만든 최초의 옷 재료-무화과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7.0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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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 '풀꽃나무 타령' 115]

한자로 무화과(無花果)는 ‘꽃이 피지 않는 과실’이란 뜻이다. 그러나 무화과는 꽃턱이 변한 열매 안쪽에 꽃이 많이 달리는 서아시아 원산의 갈잎나무이다.

한반도에서는 열매를 얻기 위하여 심어 기르는 과수이다. 성서에 따르면 태초의 인간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의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곧바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눈도 주위를 보지 못할 정도로 실눈이었던 것 같다. 성서 창세기 3장에는 ‘여자가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 그것을 주었다. 그래서 그도 먹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신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았다. 그들은 무화과의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치심은 옷을 만드는 지혜를 낳았으며, 무화과의 잎은 최초의 옷이 되었다. 이 기록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지혜의 나무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 나체로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무화과의 잎으로 옷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지혜의 나무는 초기 그리스도 시대부터 자주 무화과를 일컬었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는 로마교황 식스투스(Sixtus) 4세의 명으로 바티칸에 건설된 성당에 사과나무 바로 옆에 무화과를 그렸는데, 이는 의복을 제공하는 나무의 뜻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는 본래 트라키아 산지의 신이며, 식물 및 동물의 생명력을 주장한 신이다.

디오니소스는 농민들에게 무화과 열매를 많이 열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때문에 그의 제삿날에는 여성들이 모두 무화과 열매로 엮은 목걸이를 걸고 격렬한 춤을 춘다.  그리고 로마인들은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Romulus)와 그의 쌍둥이 형제 레무스(Remus)가 그들의 아버지인 농업과 전쟁의 신 마르스(Mars)에게 바쳐진 무화과 아래에서 자랐다고 믿었다.

성서 마가복음 11장에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믿음을 설교한 내용이 있다. 예수가 예루살렘 동쪽의 베다니에서 12제자와 함께 성전을 둘러보고 나왔을 때 배가 고파 곤경에 빠져 있었다. 예수는 그때 철이 일러서 열매를 맺지 아니한 무화과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부터는 사람들이 영원토록 무화과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다음날 아침, 그곳을 지나가다 무화과가 말라있는 것을 본 베드로가 “예수님, 어제 저주하시더니 무화과 열매가 말랐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예수는 “이 산에게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면 그렇게 되는 것으로 마음을 의심치 않을 때에 그대로 된다”라고 대답하였다.

예수는 자기의 말을 제자들이 믿게 하기 위하여 무화과로 그 실증을 보였던 것이다. 코란 96장에는 “우리는 자비롭고 자애로운 알라의 이름으로 무화과에 걸고, 올리브나무에 걸고, 시나이(sinai)산에 걸고, 이 평화로운 나라 메카에 걸어서 인간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창조하였다. 그리고 그를 가장 낮은 것으로 끌어내렸다”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전하는 속신은 무화과 밑에서 자면 수녀의 유령이 깨워서 “칼을 잡으시오”하고 위협하는데, 그때에 칼날 쪽을 잡으면 살해당하고, 운이 좋게 손잡이 쪽을 잡으면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의 곡물상인은 무화과 열매가 열리는 방향을 보고 판매 정도를 점쳤다.

중세말기 이후 그리스도의 수난 그림 중에 이 식물이 등장하는 것은 구제를 상징하거나 반대로 죽음을 암시한다. 원죄와의 관계에 따라 욕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봄에 새싹이 나온다고 하여 봄을 표상한다. 또한 무화과 잎의 소리로 미래를 점쳤다는데서 예언, 미래를 상징한다. 꽃말은 풍요, 다산 등이다.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hssong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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