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동 떡이 조선 왕가의 음식이라고?
낙원동 떡이 조선 왕가의 음식이라고?
  • 황교익 / 맛칼럼니스트
  • 승인 2010.04.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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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서울음식 먹어본 지 30년’ 3]

서울은 조선의 왕가가 살았던 도시이다. 조선의 왕가는 지역의 특산물을 공출하여 먹었다. 조선시대에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인간들이다. 조선이 망하자 그 궁궐의 요리사가 요릿집을 차렸다. 조선 왕가의 음식을 낸다고 하여 당시 권세가들이 들락거렸다. 기생도 있었다. 그 조선 왕가의 음식은 대형 요정으로 그 맥이 이어졌고 일부는 강남 룸살롱의 메뉴가 되었다.

나 같은 서민이야 요정에 갈 일이 없으니 조선 왕가 음식의 적통을 맛보지는 못하였다. 이 요정의 단골들이 정치인들이라고 한다. 조선이나 대한민국이나 맛있는 음식은 정치권력자들의 몫인 모양이다.

▲ 서울 종로구 낙원동 일대 떡집 풍경. ⓒ 황교익

궁중의 나인들이 떡 장사를 했다는 ‘뜬소문’

오래 전 음식문화에 대한 여러 자료를 뒤적이다가 놀라운 정보를 입수하였다. 낙원동 떡집의 유래에 관한 것이었다. 경술국치로 인해 궁중의 나인들이 궁 밖으로 쫓겨났는데, 마땅히 할 일이 없던 그들이 비원과 창경궁이 가까운 그곳에 터를 잡고 궁중에서 배운 떡 빚는 기술을 바탕으로 떡 장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요정에 가지 않아도 조선 왕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취재를 나갔다. 경술국치면 1910년이다. 만약 조금 젊은 궁중 나인이 떡 장사를 했다면 그의 2대나 3대 후손이 낙원동에서 아직까지 떡 장사를 하고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취재를 갔다. 혹 후손은 없더라도 궁중 나인과 친분이 있었던 사람의 후손이라도 있을 듯하였다.

낙원동의 떡집들을 하나하나 돌면서 “혹시 궁중 나인의 후손인가요?” 하고 질문을 던졌다. 미친놈 취급을 당하였다. 누가 엉터리 정보를 책에다 적어놓은 것이었다.(음식의 유래 등에 대해 쓰려면 취재는 하고 썼으면 한다. 근거 없이 떠도는 말을 확인도 않고 문자화해놓으면 나 같은 후학들이 미친놈 취급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두었으면 싶다. 낙원동 떡집 돌면서 이를 확인하는 데는 한나절이면 된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근대화 초기의 서울 풍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서울 정도 600년>의 저자 이경재씨에게 자문을 구했다.

“궁중 나인?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는 한데, 믿을 만하지 못해요. 조선시대 낙원동은 놋그릇을 주로 파는 조그만 시장이었다가 일제시대에 제법 규모가 커졌지요. 제 생각엔 옛날부터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 하여 청계천 남쪽인 남촌엔 술이 맛있고 청계천 북쪽인 북촌엔 떡이 맛있다고 했는데, 아마 그 전통이 이어져 낙원동 떡이 유명해진 게 아닌가 합니다.”

남촌, 즉 남산 아래 동네엔 가난한 선비들이 모여 살았는데 쌀이 없으니 떡 쪄먹을 형편이 못 되어 술을 빚어 마시고, 북촌에는 권세 깨나 누리는 양반과 종로의 시전 부자들이 살았는데 시시때때로 떡을 해먹는 호사를 부렸다는 것이다. 낙원동은 북촌과 종로 시전을 잇는 길목에 있다. 조그만 시장도 있었다. 떡 장수가 생길 만한 위치인 것이다. 장꾼들을 상대로 “북촌 떡 사세요” 하는 떡 장수의 모습이 쉬 떠오르지 않는가.

낙원동 떡집이 유명해진 이유

추가 취재에서 더 실제적인 증언들을 들었다. 1950년대부터 낙원동에서 해장국집을 하고 있는 토박이 아줌마의 증언은 이랬다.

“이 동네에서 쭉 살았어요. 이 일대가 그리 크지 않은 시장이었는데 떡 장수는 별로 없었어요. 좌판에서 인절미니 시루떡 파는 할머니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정도는 어느 시장에나 있지 않아요?”

한 떡집의 아주머니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전에야 좌판에서 떡을 팔았지요. 텔레비전 드라마 ‘육남매’ 보셨죠. 거기서 장미희가 떡 광주리 이고 ‘똑(떡의 장미희식 발음) 사세요’ 하며 다니잖아요. 딱 그 모습을 연상하면 돼요. 1985년에 쇼윈도 단 떡집들이 처음 생겼는데 모두들 ‘백화점 할려나’ 하고 웃었지요. 당시 결혼식, 회갑연 주문이 종종 들어오는 편이었어요. 서울은 온갖 지방 사람들이 다 모여 살잖아요. 주문에 따라 경상도 떡도 만들고 전라도 떡도 만들고 하다 보니 낙원동 떡의 종류가 다양해졌고 그래서 유명해진 것이라 보면 돼요.”

결국 조선 왕가의 음식을 먹으려면 요정에나 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나 같이 천박한 맛칼럼니스트가 요정이라니. 김수영의 시를 읽으며 마음을 추스렸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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