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유쾌함, 피 상징의 포도주 재료-포도
기쁨, 유쾌함, 피 상징의 포도주 재료-포도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7.12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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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 풀꽃나무타령-117]

프랑스는 최첨단의 패션 유행과 더불어 빵, 달팽이 요리, 치즈 등으로 잘 알려진 나라이다. 또한 프랑스는 포도주하면 생각날 정도로 포도주 생산이 많은 나라이다.

프랑스 요리는 풍부한 재료와 세련된 맛이 특색이며, 일반적으로 포도주를 조미료로 쓰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인지 프랑스 사람들은 포도주, 치즈, 빵, 간제품 등을 변함없이 먹는다.

최근 프랑스 사람들은 포도주 소비량이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식사 때에 한두 잔, 퇴근길에 한두 잔, 집에 가서 또 한잔 등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다. 이는 프랑스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음식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는 니사의 산에서 놀다가 포도를 발견하고 포도주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아티카의 이카리오스(Icarios)에게 포도를 주고 포도주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이카리오스는 곧 포도주를 만들어 목동들에게 주었으나, 목동들은 실컷 마시고 취하자 이것을 독약으로 생각하여 이카리오스를 죽였다고 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옛날 집을 지을 때 포도주를 보관하기 위하여 지하실을 크게 만들었다고 한다.
천주교에서는 포도주를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주었다고 하여, 성체성사에 쓰고 있으며, 그리스 아티카에서는 12월의 디오니소스 축제 때에 신에게 포도주를 바치거나 2월의 꽃놀이 축제 때 포도주를 맛보는 행사가 행해진다.

그런데 중국의 전설에 따르면 포도주는 기원전 2천년 무렵에 유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황제는 포도주가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으로 믿어, 유를 중국에서 쫓아내었다. 그리고 포도주를 절대로 마시지 못하게 하였다. 한반도에서는 ‘산림경제’에 포도주 제조방법이 기록되어 있고, ‘지봉유설’에는 오래가는 술로 포도주가 있다고 하였다.

‘한 번 해봐서 안 되면 다시 하지 말라’는 교훈의 포도 관련 이솝우화가 있다. 포도를 따는데 있어서 누이동생과 라이벌 의식을 느낀 오빠 여우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모두 뜀을 뛰면서 포도를 따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다. 한 송이의 포도도 따지 못한 오빠 여우는 결국 포도밭 주인이 쏜 총에 맞고 죽었다.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이집트에서 유대인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모세가 척후를 보내서 주위의 형편을 살피게 하였다. 이때, 척후는 에시콜 계곡에서 두 사람이 짊어져야 할 정도의 포도송이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육사는 ‘청포도’에서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이라 하였고, 고대 그리스의 식철학자이며 물학자 테오프라스투스(Theophrastus)는 ‘포도밭만큼 포도 품종이 있다’라고 하였다.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는 당시에 ‘150종류의 포도주가 있다’라고 기록하였으며, 그 시대의 시인 웰길리우스는 ‘품종이 몇 개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라고 읊었다. 고대 그리스 시인 아나클레온은 ‘포도에서 술이 되는 달콤한 물이 흘러나온다’ 라고 노래하였다.

소아시아에서는 노아가 포도밭을 일구자 악마가 나타나 포도밭에 양, 돼지의 피를 거름으로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 포도주는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미쳐 신 또는 악마의 피를 마셨다는 느낌을 주었다. 사람들은 포도주를 ‘대지의 피’라고 하였고, 포도주와 피를 동일시함으로써 죽은 자의 숭배 의미가 생겨났다.

그리고 고대 사람들은 포도를 기쁨, 유쾌함, 분노의 나무 등으로 불렀다. 페르시아에서는 포도를 재산의 상징으로 여겨 따지 않았으며,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 등의 여러 고전에서는 술잔치의 뜻이 있었다. 꽃말은 신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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