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용에다 음료, 화장품 향료로 이용-박하
약용에다 음료, 화장품 향료로 이용-박하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7.1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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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 '풀꽃나무 타령'-118]

박하는 꿀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대체로 온난한 기후를 좋아하며, 특히 수확기에 비가 적게 오는 지역에서 잘 자란다. 줄기와 잎은 그늘에서 말린 후 수증기로 증류하여 연한 녹색의 박하유(박하기름)를 얻는다.

이것을 냉각법으로 정제하면 무색의 결정인 박하뇌와 투명한 박하유를 채취할 수 있다. 박하는 잎에 건엽중량 1% 정도의 정유가 함유되어 있으며, 향기가 강한 멘톨(menthol)이 주성분이다. 때문에 박하는 향료로 쓰거나 청량제로서 치약, 음료, 화장품 등에 첨가한다.

또한 제약원료로서 흥분제, 건위제, 진통제 등으로 약용한다. 고대 로마인과 헬라인들은 박하 종류를 조미료나 약용으로 썼다. 예로부터 전갈에 물린 상처 또는 위장에 좋으며, 설사약으로 달여 먹거나 눈병에 좋다고 하여 잎으로 눈을 비비는 습속이 행해지기도 하였다.

그리스에서는 박하는 전쟁 중에 먹거나 심지 않는다는 금기가 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박하를 먹으면 사람 몸을 차게 하고 군인의 용기와 정신을 떨어뜨린다’고 하였다. 또한 로마제국의 장군이며 정치가 아에티우스(Aetius)는 박하로 인하여 불붙은 열정이 병사의 모든 기력을 소진시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 생산량의 90%를 차지할 정도의 주요 생산국이었다. 한반도에는 오래 전에 중국에서 약용으로 도입되었으나 그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기록으로 보면 진사량의 ‘식성본초’ 및 송나라 때의 ‘본초도경’에 신라의 박하가 소개되어 있으며, 고려 때의 ‘향약구급방’에는 약용 용도가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에서 채유를 목적으로 재배가 시작된 것은 1910년 무렵이다. 박하 종류는 고대 그리스 시대와 성서 시대에서 이미 재배되었고, 이집트에서는 BC 600~BC 1000년경에 재배된 흔적이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볼 때에 박하유를 목적으로 재배가 시작된 것은 1750년 무렵이다.

성서의 마태복음 23장 23절과 누가복음 11장 42절에는 박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종교적 열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십일조로 바친 방향식물로 나온다. 성서에 나오는 박하는 중동에서 많이 심었던 멘타 롱기폴리아(Mentha longifolia)로 여겨지는데, 유월절(3~4월) 첫날밤에 새끼 양과 함께 먹었던 쓴 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박하의 탄생화 유래담은 신화로 전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의 왕 하데스(Hades)는 모처럼 지상에 내려와 아름다운 요정 멘테를 만났다. 그 후 이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Persephone)는 남편의 행동을 뒷조사하여 남편이 멘테와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다.

페르세포네는 멘테를 불러 윽박지르고 욕을 하였다. 그래도 이들의 사랑은 변함없었다. 아내 페르세포네는 남편과의 사랑을 완전히 끊어 버리기 위하여 멘테를 풀로 바꾸고 말았다. 멘테가 변한 풀이 박하였다고 한다.

한편 영국의 화학자 플리스토리는 1771년에 한 용기에는 쥐만 넣고 한 용기에는 박하의 잎가지와 쥐를 함께 넣어 실험을 하였다. 일주일  뒤, 쥐만 넣은 용기의 쥐는 죽었고, 박하 잎가지를 함께 넣은 용기의 쥐는 살아 있었다. 곧 동물의 호흡에 필요한 산소가 식물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박하의 실험으로 증명하였던 것이다.

박하 향기는 오래 전부터 사랑의 도구로 여겼고, 그리스의 모든 신랑은 결혼식 때에 박하로 만든 화환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열정적인 사랑의 상징으로 14세기까지 꽃말에 남아 있었다. 꽃말은 미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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