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의 북대문, 숙정문(肅靖門)
한양도성의 북대문, 숙정문(肅靖門)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 연구간사
  • 승인 2010.07.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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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각순의 ‘서울 문화유산 둘러보기’ 14]
숙정문은 종로구 삼청동 산 2-1번지에 위치한다.
즉, 서울 도성의 북쪽에 위치하여 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휴암(鵂巖, 부엉바위)과 응봉(鷹峰)에 못 미쳐 위치하고 있다.

▲숙정문   ⓒ나각순


현재 경복궁 동십자각 사거리에서 삼청동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면 조선시대 도성 내 가장 경치가 좋았던 삼청동문을 만난다. 이 삼청동문을 이루는 골짜기가 옛 숙정문에 오르는 길이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삼청터널을 통과하여 삼청각과 성북동․정릉동으로 이어지는 길로 통로가 이어져 있다.
바로 삼청터널이 있는 산언덕에서 북쪽으로 오르면 숙정문을 만나며, 삼청각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면 서울성곽과 함께 숙정문이 보인다.

숙정문은 도성의 북문으로 그 기능은 서울에서 의정부를 거쳐 원산과 함경북도로 이어지는 관문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숙정문은 4대문ㆍ4소문을 갖추고자 했던 조선왕조 도성의 성문체제에 의한 형식적인 구도에 따라 축조되기는 하였지만 실질적인 기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이 살지 않고 교통로로서의 필요성을 갖지 못한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문의 기능은 동소문인 홍화문(후에 혜화문)과 동대문인 흥인문이 대신하였던 것이다.

한편 영조 연간에 숙청문을 다시 지을 때 동쪽으로 약간 옮겼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군사상의 도성 방위와 순찰함에 있어 지대가 높고 험하여 통행하기 불편하였던 것을 보다 편리한 곳으로 옮겨 지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숙청문의 원위치를 고증하여 지형을 서로 비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숙정문은 서울 도성의 북쪽 대문으로 처음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이다. 한편 숙정은 ‘북방의 경계를 엄하게 하여 도성 안을 평안하고 정숙하게 한다.’는 뜻으로, 숙청은 ‘도성 북쪽의 경계를 엄하게 하여 도성 사람들이 정숙하고 맑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게 한다.’고 해석할 수 있어 비슷한 뜻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 초 성문의 이름을 붙일 때 유교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가운데 오행(五行)에 따라 방향을 잡아 동쪽은 인(仁), 서쪽은 의(義), 남쪽은 예(禮)를 취하였으나 북쪽은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북쪽의 방향인 지(智)는 숙종 연간에 탕춘대성(蕩春臺城)의 성문으로 한성의 북쪽 문이라는 뜻에서 한북문(漢北門)으로 불리었던 ‘홍지문(弘智門)’으로 보강된다.
그리고 중앙의 신(信)은 고종 연간에 종루의 이름을 보신각(普信閣)이라 이름하면서 오행이 갖추어졌다.

숙청문은 태조 5년(1396) 9월 도성의 제2차 공역이 끝나고 도성 8문이 준공되었을 때에 함께 이루어져 이름이 붙여졌으며, 속칭으로 북문(北門)이라 불리었다.
그런데 태조 13년 6월 풍수학생 최양선(崔揚善)이 “장의동의 창의문과 관광방(觀光坊)의 동령(東嶺)에 있는 숙청문은 지리학상 경복궁의 양팔과 다리 같으니 길을 내어 지맥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문을 막고 통행을 금지할 것을 청하였다.
이에 숙청문과 창의문을 폐쇄하여 길을 막고 거기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태종실록》 권25 태종 13년 6월 병인조)

그 후 숙청문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닫쳐진 문으로 존재하게 된다. 북문이 열리는 때는 주로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행하는 시기에 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숙청문은 폐쇄된 문으로 유지된 때문인지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주로 북문으로 칭하고 있으며, 중종 18년부터 숙정문(肅靖門)이라는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이후로는 두 가지 명칭이 혼용된다.

이름이 달라지기 시작한 연유를 알려주는 기록은 없으나 중종 26년 북정문(北靖門)이라는 표현과 선조 20년의 숙정문(肅靜門)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과, 북문이 주로 기우(祈雨)를 위하여 열리면서 소음을 피하기 위하여 시장을 옮기고, 북 치는 것을 금지하는 것과 관련하여 정숙한 기운을 진작시키는 의미에서 발음이 조용한 숙정문으로 바뀌어 진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보게 된다.

숙청문은 현재의 숙정문 보다 약간 남쪽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오늘날 삼청터널 위쪽 능선부분 언덕에 건립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숙정문과 외곽 성곽   ⓒ나각순

이제는 개방된 북악산 산행 길에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다.
숙정문에 올라 경관을 바라보며 1천만 시민의 고향인 서울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역사의 유구함을 통하여 문화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며, 이와 더불어 이 유산을 보존하고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줄 책임을 생각해 보는 것도 오늘에 사는 민주시민으로서의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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