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루각 자격루((報漏閣 自擊漏)
보루각 자격루((報漏閣 自擊漏)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 연구간사
  • 승인 2011.07.2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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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각순의 서울문화유산 돌아보기 45]

보루각(報漏閣) 자격루(自擊漏)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시각을 알려주는 건물이라는 뜻의 보루각(報漏閣)에 설치된 스스로 치는(擊) 물시계(漏)란 뜻이다. 즉, 자동시보(自動時報) 장치가 부착되어 때가 되면 스스로 시간을 알리는 물시계를 말한다.

종로구 세종로 1-57번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으며, 1985년 3월 3일에 국보 제229호로 지정되었다. 청동 제품으로 큰물그릇은 지름 93.5cm, 높이 70cm이고, 작은 물그릇은 지름 46cm, 높이 40.5cm로 중종 31년(1536)에 제작된 작품이다.

이런 자격루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세종 때 장영실(蔣英實)이 처음으로 만들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자격루는 세종 16년(1434) 6월에 완성되어 경복궁 남쪽에 세워진 보루각에 설치되어 그 해 7월 1일을 기하여 공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조선왕조의 새로운 표준시계로 등장하였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자격루에 대한 구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파수호(播水壺·물통)는 4개인데 크고 작기가 차이가 있다. 수수호(受水壺·물받이통)은 2개로 물을 갈 때에 번갈아 가며 쓰는데 길이가 11척 2촌, 둘레의 지름이 1척 8촌이다. 살은 2개인데 길이가 10척 2촌이다. 그리고 면은 12시로 나누고 시마다 팔각으로 나누었는데 초정여분(初正餘分)은 합해 100각이 되며 각은 12분으로 만들었다. 밤에 쓰는 살은 전에는 24개였는데 갈아 쓰기가 번거로워 다시 수시력(授時曆)에 의하여 주야분(晝夜分)의 오르고 내리는 비율을 2개의 절기로 묶어 한 살에 해당하게 함으로써 모두 12개의 살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을 맡은 목인(木人)을 만들어 시각에 따라 스스로 알리도록 하였다.

그 구조법은 집 3동을 짓고 동쪽 칸에 2층으로 자리를 만들어 위층에 삼신(三神)을 세웠는데, 하나는 점명고(點鳴鼓)를 맡는다. 중층의 아래에는 평륜(平輪)을 설치하고 바퀴 둘레에 12신(十二神)을 배치하였는데 각각 철사로 줄기를 만들어서 상하로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다. 신은 시간을 가리키는 시패(時牌)를 잡고 있어서 서로 번갈아 시간을 알린다. … 파수호로부터 새어 나오는 물이 수수호로 흘러 들어가면 떠 있는 살대가 점차로 떠오른다.

시각에 따라 왼쪽 구리판 구멍의 장치를 튕기면 그 장치가 열리면서 큰 구슬이 떨어진다. 그것이 굴러서 자리 아래에 걸린 짧은 통으로 굴러 들어가는데 이것이 떨어지면서 장치의 숟가락을 움직이게 하면, 이 장치의 다른 끝이 통 속에서 올라와 시(時)를 맡은 신(神)의 팔꿈치를 건드려 종이 울리게 한다. … 모든 기계는 모두 속에 감추어져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보이는 것은 관(冠)과 대(帶)를 갖춘 목인(木人)뿐이다.” 
 
이상의 기록으로 자격루는 다음과 같은 원리로 작동하였다. 먼저 맨 위에 있는 큰 물그릇인 파수호(播水壺)에 넉넉히 물을 부어주면 그 물이 아래의 작은 그릇을 거쳐, 제일 아래쪽 길고 높은 물받이 통에 흘러든다. 그리고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떠 있는 잣대가 점점 올라가 미리 정해진 눈금에 닿으면, 그곳에 장치해 놓은 지렛대 장치를 건드려 그 끝의 쇠 구슬을 구멍 속에 굴러 넣어준다. 이 쇠구슬은 다른 쇠구슬을 굴려주고 그것들이 차례로 미리 꾸며 놓은 여러 공이를 건드려 종과 징·북을 울리기도 하고, 또는 나무로 만든 인형이 나타나 시각을 알려주는 팻말을 들어 보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제작된 세종 때의 자격루는 경회루(慶會樓)의 남쪽에 보루각(報漏閣)이라는 전각을 새로 지어 그 안에 설치하였다. 여기서 한밤중 3경(三更)에 시각을 알리는 북소리가 세 번 저절로 울리면, 그 소리를 들은 경복궁 정문의 문지기들은 다시 문루 위에 있던 북을 세 번 졌다. 그리고 그 소리가 종각의 북 치는 사람 귀에 들어가 다시 종각에 북을 세 번 울려주어 서울 시내에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결국 이 자격루는 당시 조선왕조의 표준시계가 되었던 것이다.

세종 때에 정교함을 자랑하던 거대한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는 장영실(蔣英實)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복잡하고 정밀한 자동 시보장치를 설계 제작할 수 없었다는 ‘세종실록’과 그 밖의 문헌의 기사로 보아도 자격루의 제작은 조선조에 있어서 물시계를 기계시계로 발전케 하는 커다란 기술 혁신을 가져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자격루는 제작된 지 21년 만인 단종 3년(1455)에 자동시보장치의 사용이 중지되고 말았다. 장영실이 죽고 공동 설계자였던 김빈(金?)도 그 해 10월에 운명한 것에서 미루어 볼 때 고장 난 자동장치를 고칠 수 없었던 게 주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자격루가 다시 작동하기는 그 후 14년 만인 예종 1년(1469)이었고, 연산군 11년 (1505)에는 자격루가 창덕궁에 이전되어 새로 지은 보루각에 설치되었다. 그 후 성종 대에 이르러 자격 장치에 의한 시보와 시간이 잘 맞지 않게 되자, 자격루가 만들어진 지 100년 만인 중종 29년(1534)년에 새 자격루를 만드는 작업이 착수되어 중종 31년(1536)에 완성된다. 이 때 만들어진 자격루가 국보 제229호로 지정된 본 유물이다.

이 자격루의 누기(漏器)가 지금 국립고궁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이 누기가 ‘중종실록’에 기록된 보루각의 새 물시계임은 큰 물통에는 ‘가정병신유월일조(嘉靖丙申六月日造)’라는 제작연대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 명백히 확인된다. 또 물받이통에는 솟아오르는 용모양을 양각해 놓았으며 중종 때 이를 만든 우찬성(右贊成) 유보(柳溥)를 비롯한 참여자들의 이름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작은 물통(小漏壺)을 놓았던 돌받침대는 창덕궁 명정전 뒤에 2개 남아 있었는데, 이것이 중종 때의 것인지, 효종 때의 것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지금 창경궁 명정전 뒤에 2개가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아 소재가 궁금하다. 여기서 누기의 명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都提調
    領議政 金謹忠
    右議政 金安老

    提調
    右贊成 柳溥
    工曹參判 崔世鄭

    都廳
    右通禮 朴翰
    司僕寺正 李雲穡
    司憲府執義 安法□
    掌 金逐里

    都造官
    掌樂院主簿 蔡□□
    天文學敎授 辛輔商
    昭格署參奉 姜永世
    天文隸習官 印光弼

보루각자격루(報漏閣自擊漏)에서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큰 물통 1개, 작은 물통 2개, 물받이통 2개이다.이 중 큰 물통은 청동제로 크기는 지름 93.5cm, 높이 70cm이며, 옹기로 만든 작은 물통은 지름 46cm, 높이 40.6cm이고, 물받이통은 청동제로 높이 196cm, 외경 37cm로 물이 흘러내리는 파이프는 지금 없으나 큰 물통에 뚫린 직경이 2.7cm이므로 대략 그 정도로 추측된다.

그리고 새 자격루에 대하여 ‘중종실록’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들이 보인다. 중종 29년(1534) 9월 17일 보루각을 개조하고 창덕궁에 누기를 배설케 하였다. 새 누각은 중종 31년(1536) 6월 28일에 제작이 완료되어 보루각 조성도감(造成都監) 김안로는 가각(家閣) 및 자격인물(自擊人物) 등 제구(諸具)가 완성되었음을 왕께 아뢰었고 우윤(右尹) 정사용(鄭士龍)으로 하여금 기(記)를 작성케 하고 호조판서 소세양(蘇世讓)으로 하여금 명(銘)을 짓게 하였다. 그리하여 새 보루각은 그 해 8월 20일에 완성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완성되어 사용하기 시작한 새 누각은 그 구조가 대략 세종대의 경복궁 보루각의 자격루와 같은 것인데 세종 때의 것은 점수(點數)를 자격할 뿐이었지만 이 새 누각은 인정(人定) 파루(罷漏)를 모두 자격할 수 있게 제작되었다. 중종은 8월 24일에 새 보루각을 돌아보고 제조(提調)·낭관(郞官)·감조관(監造官)·천문예습관·자격장(自擊匠) 등에게 상급을 내리게 하였다. 여기에 특히 상급을 후하게 준 2명의 이름이 따로 적혀 있는데 그 일을 시종 ‘전장(專掌)’했다는 낭관(郞官) 김수성(金守性)과 자격장 박세용(朴世龍)이 주목을 끈다. 이들의 이름은 자격루 수수통(受水筒)에 양각된 명문(銘文)에 적힌 명단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격장이란 특수한 공장(工匠)이 있는 것도 여기서만 눈에 뜨인다. 자격장이란 자격루의 자격장치 제작에 능통한 기술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자격루는 그 후 몇 차례의 수리 개조를 거쳐 조선말까지 사용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명종 5년(1550) 6월 대루주전죽(大漏籌箭竹)과 동부귀(銅浮龜)를 개조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임진왜란 후 선조 34년(1601)에 난으로 파괴된 보루각의 누기를 중수하였다.

그리고 효종 3년(1652) 5월에도 보루각의 누기를 개조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효종 3년의 개조는 시헌력으로 개력(改曆)하는 데 따른 시제(時制)의 변화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 하더라도 51년마다 한번 씩 개조한 것이 되어 흥미가 있다. 이 자격루는 몇 차례의 수리 개조를 거쳐, 효종 4년(1653)부터 1일 96각의 시제로 되면서 자격장치가 100각제 때에 맞는 것이어서 소용이 없게 되자 누각을 맡은 사신(司辰)이 잣대(箭竹)로 측정한 시각을 손으로 쳐서 알리는 수동 물시계가 되었다. 이 유물은 현재자동시보장치는 완전히 없어지고 누기(漏器)만 남아 있다.

이 물시계에 대해서 '증보문헌비고'와 '국조력상고(國朝曆象考)'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누호(漏壺)의 법에는 파수호가 세 개 있는데 그 크기가 각각 다르다. 가장 큰 것은 허리둘레가 12척이니 즉 옛 야천지(夜天池)이고 그 다음 것은 옛 일천지(日天池)이고 가장 작은 항아리가 옛 평호(平壺)이다. 수수통(受水筒)이 두 개 있는데 지름이 모두 1척 2촌이고 높이가 모두 6척 8촌으로 밤과 낮에 번갈아 쓰며 이것이 옛 만수호(萬水壺)이다.

전이 24개 있는데 24기(氣)에 준하고 길이는 각각 6척 2촌이다. 수시력(授時曆)의 옛 법은 낮과 밤을 100각으로 하였으나 지금의 시헌신법(時憲新法)의 전분(箭分)은 9육각, 각 분(刻分)을 15분으로 하여 모두 12시로 하고 한 시를 팔각으로 하였다. 얇은 구리판을 붙여서 부구(浮龜)를 만들어 크기를 수수통의 속둘레와 같게 하였는데 등에는 장방형(長方形)의 구멍이 있으며 전을 이 구멍에 꽂아 놓고 거북을 통 속에 넣었다. 통 속에 물이 고이면 거북이 뜨고 거북이 뜨면 전이 올라온다.

‘한경지략(漢京識略)’에는 또 보루각과 누국(漏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보루각은 시강원 동편에 있다. 광해 6년에 이 집을 세워서 지금껏 그대로 있었으나 오래도록 수리하지 않아서 금년 여름(순조 28년)에 장림으로 모두 무너지고 지금의 누국이 그 옆에 있다. 금루관은 왕이 행차할 때에 시각을 알려 드리고 정각에는 북을 치며 또 매일 정오와 신시(申時)에 몸소 내각에 가서 시각을 보고하며 또 주시동(奏時童)이 있어서 궁궐 안 각 관청에 주시패(奏時牌)를 꽂는다. ‘문헌비고’에 보면 금루관(禁漏官)의정원은 30명이라 한다.

이 누기의 크기는 청동 대파수호(大播水壺)의 직경이 93.5cm 높이 70cm이고 도기(陶器) 소파수호 2개는 최대 직경 46cm 높이 40.5cm, 청동 수수통 2개는 외경 37cm 높이 199cm이며 물이 흘러내리는 파이프는 지금 없으나 대파수호에 뚫린 구멍의 직경이 2.7cm이므로 대략 그 정도가 아닌가 생각되나 그 길이는 분명치 않다. 그리고 광복 전 경성박물관(京城博物館)에 전시되었을 당시만 해도 파수호와 수수통(물통)을 잇는 관과 살대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물시계는 물의 증가량과 감소량을 측정하는 장치이다. 그런데 자동시보장치가 마련되어있지 않으면,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이 항상 옆에서 지켜보다가, 일정한 시간이 되면 알려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컸다. 이런 까닭에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자격루의 발견은 인위적으로 시간을 알려야 하는 수고를 없앴을 뿐만 아니라, 조선전기 과학기술의 수준을 웅변해 준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특히 국보 제229호 보루각 자격루는 중국 광동에 남아 있는 명나라 때 만들어진 물시계보다 조금 늦게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규모가 크고 만듬새가 훌륭하여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우리나라의 매우 귀중한 과학문화재이다. 우리가 늘 접하는 만 원짜리 지폐에 모델이 바로 이 자격루인 점은 그만큼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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