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잘 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공부를 잘 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 이태향 객원기자
  • 승인 2010.07.3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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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서원 이양호 교장
현대에 와서 빛바랜 단어들이 있다. 전통, 예의범절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도 ‘도덕’은 단연 으뜸이 아닐까 한다. 그 본래적 의미는 사라지고 고리타분하고 완고한 느낌만 남아 도덕 운운하는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다산서원 이양호 교장
21세기가 10년도 더 지난 지금,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을 역설하는 교육자가 있다.

그는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고 독일 발도르프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귀국하여 경기도 여주에 고전학교 다산서원(www.dasanseowon.co.kr)을 설립하려 하고 있다.


제대로 된 지성인을 키우는 공부

“자기 스스로 자기 법을 갖는 법의 주체가 되는 도(道)를 실천할 때, 자기 몸에 쌓이는 게 덕(德)입니다. 공부와 인성은 정말 반비례하는 것일까요? 교육은 인문(人文)을 밝히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제 인격을 닦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지성인이 키워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양호 교장(45)을 만난 곳은 우면동에 있는 EBS방송센터. 매주 목요일마다 EBS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순수의 시대>라는 코너(12시25분-55분)를 통해 동화 속에 깃든 은유와 상징을 탐구하고 있다.

<<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라는 책을 낸 적이 있는 그는 굳이 ‘동화(童畵)’라고 말하기를 꺼려했다.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고 여겨지는 동화, 즉 메르헨은 본래 어른을 위한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메르헨의 위대함은 어린이에게도 그것을 들려줄 수 있다는 데에 있는 것이지요. 인간적인 것의 근원이나 심층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메르헨이나 옛이야기는 읽을 만한 가치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고난의 역사를 지나면서 우리의 옛 문화가 깨져버린 것에 대해 그는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앞서 이룩해야 할 일은 ‘뜻 깊은 새 문화’를 일구어 내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사람이 길러지지 않고서는, 뜻 깊은 문화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일구어낼 사람들을 길러내기 위해 학교를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시대의 희망을 고전(古典)과 서원(書院)에서 찾다

이 교장은 ‘고전’을 통해 이 시대에 걸맞은 선비를 길러내고 싶다고 했다.

“고전(古典)을 지루하고 비현실적인 교재로 여기는 것은 그 정신을 보지 못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에 깃들인 사상은 말랑말랑하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시대가 흘러도 정신이 살아 있는 책이라야 고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서양 사람들도 문제가 생기면 고대 그리스로 가서 연구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합니다. 나라가 위기 상황에 빠졌을 때 극복하게 해 줄 수 있는 힘을 고전에서 찾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른 해법이라고 봅니다.

대학자인 퇴계선생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골로 내려가 서당을 열고 코흘리개들을 가르쳤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가 일으킨 서원 운동은 과거를 위한 공부에 몰입하고 있었던 당시를 비판하는 행동이었으며 제대로 된 공부를 하도록 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다산서원   ⓒ다산서원

그가 세우려는 <다산서원>이 퇴계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서원 이름을 ‘다산서원’이라고 한 것은, 경전에 관한 재해석으로 새로운 사상을 도출해 낸 다산 정약용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것입니다. 다산은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고 서구의 지식을 받아들임으로써 시대의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교장은 지금 시대에 대해 세계관이 바뀌고 재해석해야 하는 시기라고 분석했다. 그런 과정을 겪지 않으면 새 시대를 이끌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신유박해 이후 한국 지성사는 젖동냥의 역사였습니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살지 않는 걸출한 선비가 나와야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현대 옷을 입은 선비야말로 제대로 된 엘리트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배우고 경험하는 교육

이 교장이 선비의 삶과 서원의 정신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은, 고전연구소로 이름 높은 지곡서당(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자 청명 임창순 선생을 사사한 경험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공부한 독일의 발도르프 학교의 교육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우리나라 공교육과도 맞먹는 역사의 발도르프 학교는 현재 전 세계에 1000여 개의 학교가 세워져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발도르프 교육이 이미 소개되어 있다.

“발도르프에서 강조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 자유는 보편성을 바탕으로 하고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직업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은 하지 않습니다. 사회진출을 위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내적 세계에 대한 접근을 통해 인간의 완성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균형과 조화’를 강조한다는 발도르프 교육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경쟁 속에서 큰 아이가 갑작스럽게 공동체적인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로 보였다.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강조해 마지않는 ‘경쟁’이라는 아이콘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교장의 다산서원은 차등수업료제라고 했다. 각 학생이 낼 수업료는 1대4 정도 차이가 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수업료를 어떤 방식으로 내는가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문제입니다. 돈과 능력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를 학생들은 보고 배워야 하는 겁니다.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는 경제적 평등을 경험해 본 아이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 분명합니다. 경제적으로 평등해졌을 때 사회나 국가가 어떻게 되는지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실지로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체험한 그 나라의 사회보장과 복지는 참으로 부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사회에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돈이 많아야 사회복지에 신경 쓸 수 있다는 주장은 올바른 말이 아니다. 서유럽 국가들이 복지국가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오늘 한국보다 국민소득 수준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았던 2차 대전 종전 후 전쟁이 남긴 폐허 위에서였기 때문이다. (고세훈 <<복지한국, 미래는 있는가>>참조)

이 교장의 교육관은 철저하게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의 인문학 전통과 서구의 사상을 교육을 통해 발현하려고 하는 그의 소망은 ‘과연 공부를 잘하면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는가?’라는 논쟁을 넘어 교육의 본질과 인간의 성장이라는 면에서, 그리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공동체적 인간의 육성이라는 점에서 이미 가치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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