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건드리지 말라(touch-me-not)는 봉선화
나를 건드리지 말라(touch-me-not)는 봉선화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08.06 0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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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24]

 

▲봉선화   ⓒ송홍선

그리스 신화의 봉선화 이야기는 이렇다.
올림포스 궁전에서 어떤 아름다운 여신이 절도 혐의로 조사받았다. 여신은 절도혐의가 심술궂은 신의 장난임이 밝혀져 풀려났다. 그렇지만 결백한 여신은 의심을 받았다는 것 자체를 커다란 수치와 함께 분하고 부끄러움으로 여겨 스스로 화신하여 봉선화가 되었다.

봉선화는 열매가 익으면 살짝 건드려도 씨앗이 흩어진다. 그것은 신화의 여신이 자신의 마음을 열고 지금도 무고함을 호소하는 까닭이라고 하며, 꽃말도 여기에서 유래하여 ‘나를 건드리지 마십시오’가 되었다.

봉선화는 영국에서 꽃말 그대로 touch me not(나를 건드리지 마십시오)의 이름으로 부른다. 또한 봉선화의 이름은 옛날 이 씨앗으로부터 약에 쓰이는 발삼(수지의 일종)을 만들었다고 하여 garden balsam이라 부르기도 하고, ‘툭 튀기는 건달패’라는 뜻의 snapweed라는 괴상한 이름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씨앗이 흩어지는 탄력에서 ‘튀어 오르는 베티(jumpin betty)’라는 별명도 있다.

우리 이름의 봉선화(鳳仙花)는 꽃모양이 봉황의 모습과 비슷하여 붙여졌다.
전설에서도 봉황과 관련한 봉선 궁녀의 이름과 신선의 이름에서 유래한 2가지 종류가 있다. 그 중 전자는 역사적 전설로서 봉선화의 현전 여러 특성을 매우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다.

옛날 한 여인이 선녀로부터 봉황을 받는 꿈을 꾸고 딸을 낳아 봉선이라 이름을 지었다. 봉선은 자라면서 거문고 연주솜씨로 명성이 널리 알려졌고, 임금님 앞에 나가 연주하는 영광을 얻었다. 봉선은 그 후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되었으나 임금님의 행차가 집 앞을 지나간다는 말을 들고 간신히 일어나 있는 힘을 다하여 거문고를 연주하였다.

임금님은 이 소리를 알아듣고 그곳을 찾아갔다. 임금님은 이때 봉선의 손에서 붉은 피가 맺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애처롭게 여겨 천으로 동여매 주고 떠났다. 그 후 그녀가 죽어 묻은 무덤가에 붉은빛의 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그 꽃을 봉선의 넋이 화신한 꽃이라고 하여 봉선화라 불렀단다.

그리고 어떤 다른 이야기에서는 어느 부인이 자신의 부정을 의심한 남편에 대한 항거와 결백의 표시로 자결을 한 넋이 봉선화로 자라났는데, 그 씨를 조금만 건드려도 톡 튀어나가는 것은 자신의 몸에 손대지 말라는 뜻이란다. 이러한 전설 이야기는 봉선화의 형태적 특징을 관찰한 민중들이 이를 기원론적으로 설명하려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봉선화   ⓒ송홍선

봉선화 물들이기는 원래 병마를 막기 위한 귀신 쫓는 무당의 손톱에서 시작되었다. 벽사(辟邪), 즉 이 꽃의 붉은빛은 악귀로부터 몸을 보호하려는 민간신앙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옛 문헌 ‘임하일기’에는 봉선화의 붉은 꽃잎을 쪼아 손톱에 싸고 사나흘 밤만 지나면 짙은 붉은빛이 들고, 무당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게 이 봉선화물을 들이는 것은 예쁘게 보이려는 뜻보다 병마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고증하고 있다.

봉선화물들이기는 그 꽃잎을 따서 거기에 괭이밥 풀잎을 섞고 소금을 약간 넣은 다음 곱게 빻은 것을 손톱에 붙이고 헝겊으로 꼭꼭 싸매고 하룻밤을 두면 된다.
손톱에 물이 드는 원리는 괭이밥이란 풀잎에 포함된 옥살산(oxalic acid)이 손톱의 가죽질을 물렁하게 하고 여기에 소금이 매염제가 되어 봉선화물이 잘 들게 된다는 것이다.

소녀들은 봉선화물들이기의 손톱에서 물이 다 빠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속신을 굳게 믿었다.

봉선화는 일제강점기 때 한민족이 망국의 한을 노래하던 꽃이기도 하다. 그 노래는 제목이 ‘봉선화’인데 지금도 널리 애창되고 있고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지금 봉선화의 꽃이 한창이지만 도심에서 보기가 쉽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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