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초리, 어사화로 알려진 괴목-회화나무
회초리, 어사화로 알려진 괴목-회화나무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8.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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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타령’-125]

회화나무는 원래 한반도에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오래 전에 중국에서 도입하여 심은 큰키나무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회나무, 홰나무, 괴화목(槐花木), 괴목(槐木), 괴수, 회목 등으로 부른다.

한자명의 괴목은 느티나무를 지칭하는 경우도 있어 옛 문헌의 풀이에서 혼란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기로 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집안에 회화나무를 심으면 학자나 큰 인물이 태어난다고 하여 이 나무를 학자수(學者樹), 출세수라고 불렀다. 이 나무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하여 행복수라고도 별칭하였다.

그리고 꽃이 채 피기 전에는 모양이 쌀과 비슷하다고 하여 괴미(槐米)라고도 하였다. 안동지방의 큰 정자목은 옛날 경찰서로 호출된 사람들의 모이는 장소라 하여 ‘걱정나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반도에서도 오랜 옛날부터 회화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큰 인물이 태어나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이 나무는 궁궐이나 대감 집에 심었으며, 또한 임금은 특별히 공이 많은 학자나 관리에게 상으로 내리기도 하였다.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는 고을로 새로 부임하는 관리들은 그 회화나무에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현재 회화나무가 마을 어귀에서 큰 나무로 자라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 것은 마을에서 훌륭한 학자가 나오는 것을 바라는 뜻에서 심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옛날 사람들은 이 나무가 잡귀신을 막아주는 것으로 믿는데서 마을에 심기도 하였다. 경북 안동 지역에는 큰 회화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는데, 이 나무들은 옛날 맹사성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맹사성이 안동부사로 있을 때 시내를 순찰하다가 여기저기서 여인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맹사성이 너무도 이상하여 고을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사람들은 남편을 잃은 젊은 과부들의 슬픈 곡성이라고 대답하였다. 당시에 풍수지리에도 밝은 맹사성은 이 말을 듣고 안동의 지세를 세밀히 관찰하였다. 그랬더니 안동은 과부가 많이 날 형국이었다. 이를 막기 위하여 여러 곳에 회화나무를 심게 하였더니 그 후로는 과부가 늘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안동댐 입구의 회화나무에 얽힌 이야기도 심심찮게 전하는데, 옛날 이곳에는 많은 도깨비와 물귀신이 살았다. 물귀신과 도깨비는 늘 서로 자기가 재주가 좋기 때문에 대장이라고 하며 다투었다. 그래서 물귀신과 도깨비 사이에는 항상 분쟁이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싸울 날을 받으면 반드시 이곳의 회화나무 밑에서 자주 겨루기를 하였다.

회화나무 열매는 한방과 민간에서 지혈, 양혈 등의 효능이 있어 토혈, 각혈, 혈뇨, 장염 등에 썼다. 익지 않은 열매는 신경계통의 마비를 고치기 위하여 즙을 내어 먹기도 하였다. 꽃잎은 볶아 달인 후 물을 타서 차처럼 마셨다.

회화나무는 특수한 냄새가 있어서인지 그 주변에 모기와 파리의 유충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꽃은 여름에 백황색으로 피는데, 이 꽃의 색소를 채취하여 문종이에 누렇게 물을 들인 후 그 종이에 글을 써서 부적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목재는 가구 공예품 등으로 이용한다. 가로수로 심는 경우도 많다.

회화나무의 어린 가지는 예전에 마소를 부리거나 어린 아이를 때릴 때에 쓰는 ‘회초리’로 이용하였고, 회화나무의 꽃은 조선시대 과거시험 문무과의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내리는 ‘어사화’로 쓰기도 하였다.

옛날 큰 스님들은 회화나무로 만든 책상에서 공부하고 이 나무로 베개를 만들어 베고 잤다. 커다란 회화나무 밑은 가끔 임금이 주관하는 어전회의를 여는 곳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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