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악루’, 양천향교 진산의 풍류1번지
‘소악루’, 양천향교 진산의 풍류1번지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 연구간사
  • 승인 2011.08.2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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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각순의 서울문화유산 돌아보기-49]

양천향교 서북쪽 뒤로는 궁산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궁산(宮山)은 양천향교의 진산이 되는데, 공원에는 소악루(小岳樓)가 중건되어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강 풍류 1번지에 해당되는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다.

서울의 서쪽 끝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높이 75.8m의 궁산은 조선시대 경기 양천현의 진산이었다. 이 궁산은 한남정맥(漢南正脈)의 끝자락에서 한강을 따라 서쪽의 개화산, 동쪽의 탑산·선유봉 등과 더불어 작은 봉우리로 솟아 있어 강변의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자연공원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이곳 정상 동쪽 아래 소악루가 우뚝 서 있어, 가까이는 한강 하류의 광활한 물줄기를 바라볼 수 있고, 멀리 삼각산 연봉과 안산·인왕산·남산 줄기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으니 그 경관의 아름다움은 일찍이 시인묵객들을 불러들였던 것이다.

소악루는 영조 13(1737)에 전라도 화순의 동복(同福) 현감을 지낸 정종(定宗) 후손 이유(1675~1753)가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여 그의 집 뒷동산에 지은 것이다.

소악루는 소악양루(小岳陽樓)라는 말로 악양루에 버금가는 정자를 짓고 ‘소악루’라 칭하고 시회와 풍류를 즐겼던 것이다. 본래 악양루는 중국 호남성(湖南省) 상강도(湘江道) 악양현의 서문 문루의 이름인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양자강 동정호(洞庭湖)의 드넓은 강물 풍광이 천하 제1경으로 아름다워 많은 시인묵객들이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였다.

특히 시성(詩聖)으로 칭하는 두보(杜甫)는 ‘등악양루(登岳陽樓)’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이와 견주어 이곳 소악루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경치는 곧 악양루에서 동정호를 바라보는 경치와 버금가는 곳이었으니 겸손하게 ‘소악루’라 이름 하였던 것이리라.

한편 소악루가 있던 양천은 파릉이라고도 불렀으며 1740년 이곳 양천현감으로 부임한 겸재 정선(鄭敾)은 5년 동안 궁산에 매일 올라 그림을 그리며 <소악후월(小岳候月)> 등 진경산수를 그렸던 곳이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이 당대 진경시(眞景詩)의 태두 이병연(李秉淵)과 그림과 시를 바꿔보자는 약조를 맺고 아름다운 이곳 주변의 풍경을 그렸다. 정선은 늘 궁산 소악루에 올라 맑은 한강과 그 깊은 수심(水深) 속에 푸른 그림자를 드리운 명승과 멀리 목멱산을 보며 화필을 움직였다.

이에 화답으로 이병연은 파릉(巴陵) 8경의 하나인 목멱산의 아침 해돋이 즉 <목멱조돈(木覓朝暾)>을 읊는다. 또 인왕산 서쪽 길마재의 봉화를 보고 있을 겸재 정선을 생각하며 <안현석봉(鞍峴夕烽)>이란 시를 지으니 이 또한 겸재 작품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소악루는 1842년에 편찬된 《양천현지(陽川縣誌)》에 이미 터만 남아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100년도 안되어 무너져 없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한강의 기적’을 국내외에 알리는 결정체였던 서울올림픽을 치루면서 우리 문화?예술의 진면목을 찾고 알리기 위해 1994년 6월 강서구에서는 정선의 업적과 예술혼을 기린다는 취지에서 소실된 소악루 바로 위에 새로 소악루를 지어 한강 풍류의 1번지를 마련하였다.

옛부터 양천팔경 즉 파릉팔경으로 소악루의 맑은 바람 즉 ‘악루청풍(岳樓淸風)’이 손꼽혔다. 그리고 궁산 악양루에서 바라보는 양강어화(楊江漁火; 양화강의 고기잡이 불), 목멱조돈(木覓朝暾; 목멱산-남산의 해돋이), 계양낙조(桂陽落照; 계양산의 낙조), 행주귀범(杏州歸帆; 행주로 돌아드는 고깃배), 개화석봉(開花夕烽; 개화산의 저녁 봉화), 한산모종(寒山暮鐘; 겨울 저녁 산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이수구면(二水鷗眠; 안양천에 졸고 있는 갈매기) 등의 모습은 시흥(詩興)을 절로 나게 하는 경관이다.

지금도 궁산의 정상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며 특히 한강의 드넓은 물줄기와 이를 둘러싼 강?남북의 산세는 서울 도심에서의 답답함을 일거에 떨칠 수 있는 경관으로 실로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옛 양천팔경을 상상하며 비교해 보면 비록 한강변에 아파트 숲이 형성되었다고 하나 옛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또 가까이에는 서울에 있는 유일한 향교인 양천향교, 강 건너 행주산성과 더불어 삼국시대 한강 하구를 지키던 양천고성(陽川古城)의 유적, 양천고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부군당 등이 있어 심신을 쉬면서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자연공간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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