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열망세계의 승화를 ‘감’으로 그려낸 오치균
내적 열망세계의 승화를 ‘감’으로 그려낸 오치균
  • 정민희 논설위원
  • 승인 2011.08.3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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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희의 마음으로 미술읽기] ①

독립문을 지나 판문점을 향한 통일로를 향하다 보면 적벽돌로 지어져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의 단순한 조형미로 단아한 모습에 눈길을 끄는 건축물이 보인다.

한국100대 건축물중의 하나이며, 한국현대건축의 1세대 고 김수근(1931~1986, 김바오로)의 3대 종교건축물 중 하나이며, 타계하기 1년 전에 축성된 불광동성당이다. 

은평뉴타운에 이어 불광동성당을 에워싼 아파트재개발공사로 주변의 옛모습이 모두 지워졌지만 유독 성당 오른편 담벽자리를 지키고 있어줘서 고마운 2층 상가건물이 있다.

1980년대 초 성당이 축성되는 날 옆집 화실 아이들에게도 축하떡이 온 기억이 있다. 조마조마 지켜보고만 있었던 30년 가까이 된 건물은 지금은 한국의 대표 블루칩작가인 오치균작가의 20대 청년작가시절 작업실이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ROTC복무 직후 뉴욕으로 유학을 가기 전 3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밤새 작업을 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2007년 한국미술시장의 최고 활황기 때 오치균 작가의 “내 그림이 박수근 그림보다 못할게 없다”는 자부심은 의대진학 낙방 후 준비없이 덜컥 미대로의 진로변경을 했을 때 이미 정해진 그의 운명이 아닐까?

깡마른 체격에 오로지 진한 커피향, 수북한 담배, 진한 유화물감에 기름, 추운 겨울 연탄난로가 아침에 꺼져있으면 털목도리에 퀭한 모습. 그렇지만 번쩍번쩍 빛나는 눈빛에서 쏟아지는 높은 기상의 소유자. 항상 지난밤 그려진 살구색의 폭포수같은 추상그림에 시선이 멈추어져 있었다.

80년대말 뉴욕유학시절의 외로움과 괴로움이 회색빛의 어두움으로 20년 넘게 캔버스를 수놓았지만 불광동 시절은 청년기의 열망을 담은 환희의 밝은색은 형태면에서 드러나는 분출감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본다면 덜 외로웠기에, 젊음과 희망을 안고 살았던 아름다운 시기였기에 화사한 색이 나왔던 짧은 시기가 아니었던가 여겨진다.  

감_Persimmons_2011_Acrylic on Canvas_160 x 80cm(each)

최근 10년 미술품경매시장에서 거래기록을 보면 오치균 작품평균가는 9400만원이며, 낙찰총액으로 보면 107억원이다. 중견작가로는 물론 최고기록이다.

2007년 6월에 50호(122.5*8cm)의 ‘길’은 5억원에 낙찰되기도 하였다. 물론 작가의 손을 이미 떠난 작품들이기에 작가로서 자부심은 있겠지만 어렵고 외로웠던 인생여정에서 중년에 느끼는 소중함은 역시 원초적인 귀소본능일 것이다.

1990년대말 귀국 후 ‘감’을 간간히 그려왔지만 2009년 이후 여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감’만을 선보인다.

“내고향집 앞마당가운데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작가)

가을이 성큼 다가온 이 계절, 우리의 정서이기도 하고 어린시절 감을 따서 어머니와 시장에 나가 팔며 생활했던 작가에게는 가난을 떠올리는 아이콘(icon)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감’이다.

깊어가는 계절의 장식적인 병풍그림처럼, 2점 혹은 3점 시리즈로 갤러리공간을 깊은 가을로 재촉한다. 붓을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두텁게 그리는 임파스토기법으로 늘 평면을 입체처럼 그려낸 그림은 더욱 회화의 본질에 객관적 태도로 다가가며 관념적이지만 설명을 제거해내고 있다.

감_Persimmons_2009_Acrylic on Canvas_160 x 80 (each)
“감들은 등불이 켜지듯이 나뭇가지에서 스스로 발화하는 빛처럼 켜져 있다. 등불이 하나 둘 켜질 때마다 생명은 놀랍고 새롭다.”(김훈)

대상에서 충동질로서 그리고 아무런 메시지를 넣지 않고 또 설명하지 않고 본질만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이지만 청명한 가을하늘에 떠있는 탐스러운 등불 같은 ‘감’은 깊어가는 가을에 그리움이란 메시지를 안겨줄 것이다.

■ 9월20일까지. 갤러리현대 강남. (02)519-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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