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서울 284’에 번지는 예술의 향기
‘문화역서울 284’에 번지는 예술의 향기
  • 정민희 논설위원
  • 승인 2011.09.02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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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희의 마음으로 미술읽기] ②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 첫 손꼽는 명소. 세계3대 박물관중 관람객수가 가장 많은(2010년 연간 약 850만 명) 루브르박물관이다.

지난 1793년 세워져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이집트, 그리스, 로마, 이슬람미술, 장식미술, 13세기 이전의 회화 등 약 3만5000 점의 작품을 뛰어다니며 보게 된다. 먼저 화려한 내부 장식에 주눅 든 눈으로 많은 작품 속에 묻혀 관람하다 보니 밖에 나오면 ‘모나리자’ 정도만 머리에 남을 수도 있다.

루브르박물관에 비해 역사도 짧고 규모도 비할 수 없지만, 파리 세느강변에 고딕과 비잔틴의 ‘절충주의’ 양식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아담한 미술관이 있다. 마네, 모네, 고흐, 르느와르, 드가 등 19세기 인상파 미술의 주요작품이 소장돼 있는 ‘오르세 미술관’이다.

1900년 만국박람회장으로 세워져 1939년까지 ‘오르세역’ 기차역과 호텔시설로 각광받던 곳이었지만 이후 기차역 특유의 긴 건물은 무용지물로 여겨졌다.

1970년대로 접어들어 산업문화재(Patrimoine industriel)라는 새로운 개념이 부각되면서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재구성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3명의 젊은 건축가 그룹 ‘ACT'는 역 건물 구조를 최대한 살리고, 자연채광 방식의 유리 어닝(awning)을 도입해 버려진 건물을 재탄생시켰다. 마침내 미테랑 대통령은 1986년 ‘오르세미술관’을 개관한다.

1848년에서 1914년의 사실주의에서 바르비종파 자연주의 밀레의 ’이삭줍기‘를 비롯한 보석같은 후기인상파까지의 작품을 시대 순으로 배열한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1900년에 오르세가 처음 세워졌고, 같은 해 서울에서는 서울중심의 관문인 ‘남대문정거장’이 만들어졌다. 이후 1925년 경성역(옛 서울역, 1947년 개칭)이 건설돼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수난을 거치며 한국 근현대사의 현장으로 남아있다.

▲1925년 준공당시 서울역 정면 모습

2004년 KTX 고속철도역이 들어서면서 서울역사는 철도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지금은 지난 80여 년 동안 서울의 중추관문으로서 그 앞을 스쳐간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텅 빈 서울역은 2008년 여름 조선일보가 ‘그림이 있는 집’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1회 아시아프(ASYAAF·아시아 대학생 청년작가 미술축제)’를 개최, 문화전시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보여준 적이 있다. 서울의 핵심에 위치한 서울역 광장이 관람객 대기줄로 가득 채워져 서울시민의 문화적 갈증이 얼마나 크고 앞으로 중요한 역사적 공간 활용에 대한 계획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케 했다.

‘문화역서울 284’ 재탄생
문화역+지역성(서울)+284(사적등록번호)

지난 봄 명칭공모전에 의해 복합문화공간 옛 서울역이 불리게 될 명칭이다. ‘서울’이라는 지명이 갖는 역사적, 공간적, 도시적 상징성을 결합해 탄생한 공식브랜드다.

2012년 3월 공식출범을 앞두고 지난 8월 9일에는 2년간의 복원을 거쳐 ‘옛 서울역’이 재탄생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대안적이고 실험적인 전시, 공연, 영화, 강연 등 다양한 장르가 융합한 60개의 건축 원형 복원을 기념하는 다양한 볼거리가 전시된다. 비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매력적인 경험을 향유, 감상, 체험하게 될 것이다.

개관 프로젝트인 ‘카운트다운(Countdown)'은 공간의 특성에 맞게 한국 최고 현대미술가 20여명의 설치미술작품이 설치됐으며, 공식개관일인 3월까지 총 35명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추가 설치, 시·공간을 활성화하는 예술프로젝트다.

▲김수자, <보따리 트럭 - 이민자들>, 단채널 영상, 9:17, Silent, Courtesy of MAC/VAL, Paris, and Kimsooja Studio, 2007
또한 서울스퀘어 미디어센터와의 공동프로그램으로 하루 4회의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다. 오후 8시 30분 이후 11시까지 매시 정각에 이루어지는데 시간이 맞으면 서울스퀘어 거대 미디어캔 버스에서 김수자의 ‘보따리트럭-이민자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100년 동안의 구 서울역사의 시간을 회고하는 거대한 서사시이다.

▲이불 <The Secret Sharer>, 스테인리스스틸, 아크릴, 폴리우레탄폼, PVC, PET, 유리 및 아크릴비즈, 420 x 150 x 110cm, 제공: 피케이엠갤러리 | 바틀비비클앤 뫼르소, 서울, 2011.
전시감상의 팁이 하나 있다면 건물 앞 버스정류장에서는 세계최대인 미디어 캔버스(100x80미터)가 너무 가까워 전체적인 화면의 느낌을 한눈에 감상하기 어려울 수 있다, 서울역사 뒷편 롯데마트 옥상 주차장이 살짝 올려보는 눈높이 뷰에 남산을 배경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미디어캔버스를 방해받지 않고 감상하기에 좋은 위치다.

앞으로 6개월간 노재운, 구동희, 한계륜, 박미나, 임민욱, 한계륜의 신작이 연속으로 소개된다.

1층 중앙홀 입구에는 이불 <The Secret Sharer>가 복원과 문화역서울 284의 탄생을 기념하고 새로운 변화의 수호신이 될 조각이 샹들리에처럼 설치되어있다.

얼마 남지 않은 추석, 기차를 이용한 귀향길에 선물꾸러미 가방이 부담스럽더라도 오며가며 보관함에 짐을 맡기고라도 자녀와 동행한다면 역사의 재교육은 물론 중장년층에게는 시간의 흐름을 다시 되새기는 추억의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스페인 광산도시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유치, 일본 나오시마 예술섬 프로젝트, 북경 다산쯔 798예술구 등이 대표적인 도시 공간의 재생과 복원의 미학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는 한 국가의 경제성장에 문화의 잠재력이 거대한 부가가치가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문화서울역 284’ 또한 한국의 대표적 재생프로젝트의 본보기로, 지속적이고도 풍성한 문화콘텐츠의 힘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 2012년 2월 11일까지. 문화역서울 284 전관 및 서울스퀘어 미디어캔버스. (02)340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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