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바탕이 예뻐야 한다?
본바탕이 예뻐야 한다?
  • 서울타임스
  • 승인 2011.09.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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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부잣집에 선머슴 같은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 나는 자라면서 ‘본바탕이 예뻐야’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학교 행사나 집안 일로 여러 사람 앞에 나서야하는 일이 있으면 어머니가 깔끔하게 단장해주시면서 혼잣말로 하신 말씀이다. 아마 어떻게 꾸며도 당신 딸이 성에 차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약간 민망한 미소를 지으시며, 바르고 넉넉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게 다 얼굴로 표현되어 자라면 예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내가 상처받을까봐 하신 위로였는지, 아님 훌륭한 인성을 갖추라는 교육이셨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다. 다만 다른 형제보다 뒤떨어진 외모가 콤플렉스였던 나는 되도록 이 말씀을 믿고 의지했다.

이후 외모로 크게 상처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면적 실체와 매력적 외모간 상관관계를 믿게 되었고 이후 유사한 연구결과들을 알게 되면서 어머니의 현명함에 나름 감탄했다. 

홍보컨설팅을 하게 되면서 이 기억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일을 의뢰하는 고객들 중 다수가 자신들의 ‘본바탕’은 생각지 않고 최고의 연예인처럼 보이는 ‘분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라도 알려 달라 하고, 당연히 해야 하고 남들도 다 하고 있는 일을 자기들만의 성과처럼 언론에 노출해주길 원한다.

‘좋은 실체’가 홍보의 기본 전제라 말하면 그런 상황이면 왜 돈 들여 전문가를 쓰겠냐고 되묻는다. 이어, 보도되길 원하는 매체와 기사 크기, 핵심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요구한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 취향대로 제작해 돈 주고 지면이나 시간을 사서 내보내는 광고랑 구분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서비스 대가를 넉넉히 주면 이 중 일부가 기자에게 전해져 일이 쉽게 진행될 거라 생각하고 있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어 홍보학 개론을 시작한다.

홍보는 당신들이 그동안 쌓아 왔거나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 중 괜찮은 내용을 찾아 매력적으로 알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고객과 사회가 반길만한 ‘실체’를 만들도록 돕는 것도 홍보전문가가 하는 일의 일부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언론에 뉴스로 나가게 하려면 돈도 관계도 통하지 않는 문지기, 즉 기자가 고객과 사회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야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거짓이나 과한 허풍은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보도가 되더라도 나중에 기자랑 사이도 나빠지고 고객과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다고 이해시킨다. 

그러다 생활 체험으로 이미 홍보학 개론을 넘어선 고객의 한 마디에 할 말을 잃는다. 

“아이고 무슨 말씀. 그럼 똑같은 사실을 놓고 뉴스가 왜 달라요? 뭐가 실체인지 기자들도 모르는 것 같던데. 아님, 알면서도 프로축구처럼 끼리끼리 짜고 모두를 속이나? 하긴 나도 요즘엔 신문, 방송 뉴스 안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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