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읽는 서울] 보라매공원…이재무
[詩로 읽는 서울] 보라매공원…이재무
  • 박성우 시인
  • 승인 2011.09.27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성우의 ‘PoemEssay’

보라매공원…이재무

半실업을 사는 나는 공원의 주요고객이다
나는 그곳에서 번데기를 사먹고 컵라면도
사먹고 뻥튀기를 사 잘게 부순 뒤 비둘기들을
모으고는 그들의 꽁지를 축구공인 냥 뻥
차버리기도 한다 날지 못하는 것도 새냐
나는 그들의 무위도식이 싫다 피다 만
꽁초 꺼내 빨며 뽀얗게 먼지 이는 운동장
축축 늘어진 살덩이 매달고 뛰는 중년들
바라다본다 큰 나무 그늘엔 내기 장기판이
펼쳐져 있고 철 지난 옷들을 입고 훈수 두는
늙은이들 호수와 간이동물원에는 청년
실업자들이 비루먹은 개처럼 꼬리를 길게
내리고 비실비실 어슬렁거린다 비만의
살찐 물고기들이 수면 밖으로 주둥이
내밀고는 누군가 던진 티밥을 물고 아주
느리게 사라진다 집에서 쫓겨온, 생이
무거운 사람들 공장 대신 공원으로
출근을 하면 다 낡은 시간 끌고 걸으며
어둠이 오기를 아, 한없이 길고 지루한
생이 어서 저물어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녹슬어
검붉은 얼굴들의 두꺼운 권태를 만날 수 있다


■ 보라매공원은 옛날 공군사관학교가 있던 자리라지요.
공군사관학교 시절의 상징인 ‘보라매’를 그대로 가져와 보라매공원이 되었다지요. 저도 저 공원에 두어 번 가본 적이 있어요.

근처에서 약속이 잡히면 일부러 조금 일찍 나가 공원을 둘러보다가 약속장소로 가고는 하지요. 도심에서 연못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고 줄지어 늘어선 나무 아래를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지요.

역시나 저 공원에도 삶이 무거운 사람들이 더러 나와 있군요. 회사나 공장 대신 공원으로 출근하여 퇴근시간을 막막하게 기다려야하는 실없는 실업. 그런 사람들에게는 공원의 한때가 그야말로 “한없이 길고 지루한” 시간일 수밖에 없겠지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