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생명력의 장수 상징, 채송화
강한 생명력의 장수 상징, 채송화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1.09.2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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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타령’-130]

제주도 동쪽 외딴 곳의 허름한 초가집. 비가 올 때면 빗물이 스며들고, 추운 겨울에는 세찬 바람이 방으로 몰아쳐 창살문을 흔들어대던 조그만 집. 중학교 입학 무렵에 전기불이 들어왔고, 고등학교 입학 후에 TV를 볼 수 있었던 곳.

1980년대 후반의 대학 졸업 즈음에 전화가 개통됐던 곳이 바로 필자가 자라났던 고향 집이다. 초가를 가운데로 마당과 텃밭이 널찍하였고, 뜰에는 군데군데 디딤돌이 놓여 있었다.

필자는 소년시절 이곳에 살면서 마당 모퉁이에 꽃밭을 가꾸고 채송화, 봉선화, 나팔꽃, 코스모스 등을 심었다. 어떤 꽃인지도 모르면서도 동네 어린친구가 꽃씨를 주면 좋다고 마구 뿌렸다. 어느새 가을을 지날 때쯤이면 시들어 버렸지만 여름날의 꽃밭은 내게 많은 추억을 간직하게 했다. 지금 기억으로는 여름방학이면 꽃밭의 꽃을 가꾸고 구경하는 것을 무척 즐거워했던 것 같다.

물론 텃밭과 뒤뜰에 심어진 옥수수를 한 아름 따다가 삶아먹었고, 더운 여름날 사탕수수를 베어 껍질을 벗기고 단물만 빨아먹었던 추억도 있다. 그러나 이런 추억도 꽃밭을 구경하는 것보다 기억이 떨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듯이 필자 또한 계절을 따라 피고 지는 모든 꽃을 좋아했다. 돌담에 얹혀 피어나는 장미를 비롯해 산야의 고목 밑에서 아롱다롱 수놓은 이름 모를 풀꽃이라면 모두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그 많은 꽃들 중에서도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의 꽃밭에서 피어난 채송화, 봉선화, 나팔꽃, 코스모스 등의 꽃이 그렇게도 좋았다.

서울 생활의 어느 날 필자는 한강고수부지 시민공원을 찾았던 적이 있다. 마침 자연학습장이 있어 그곳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온갖 꽃들이 즐비하게 피어 있었다. 유독 필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채송화였다. 옛날의 꽃밭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화려하게 핀 채송화는 필자의 가던 발걸음을 묶어놓고 카메라 셔터만 수없이 누르게 했다. 소년시절 자주 보았던 꽃과는 달리 크고 화려하였다. 빛깔도 노랑, 빨강, 분홍 등 여러 가지였다. 꽃의 수술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 민감하여 식물학의 교육재료로 흔히 사용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봉선화․나팔꽃․맨드라미 등과 함께 농가 및 도시의 화단에 관상용으로 많이 심어졌다. 한방에서는 잎의 모양이 말의 이빨과 비슷하다고 하여 마치현(馬齒현)이라고 하는데, 씨는 임질과 각종 종창 등의 약재로 쓴다. 민간에서는 이 풀 전체를 종창, 촌충, 살충, 각기, 급성이질 등의 치료에 이용하고 있다.

채송화는 남미 원산이다. 한반도에는 1800년대 말에 처음 소개됐다. 한자로는 채송화(菜松花)라 해서 솔잎처럼 가는 채소 잎을 가진 꽃의 뜻이 있다. 영국에서는 햇빛에서만 꽃이 핀다고 하여 sun plant, 미국에서는 이끼 같은 몸집에 장미같은 꽃을 가진다고 하여서 rose moss, 유럽에서는 큰 꽃을 가지는 쇠비름이라고 하여 large flowered purslane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대단한 멋쟁이 꽃으로 여겨 문화의 도시 런던의 이름을 인용해 ‘런던초’라 별칭하기도 한다. 채송화는 고기질의 줄기와 잎을 가지고 있어서 더위에 잘 견디며 번식력이 대단히 강하다. 여기에서는 강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이는 장명채(長命菜)라 별칭하는 이름과 관련이 있으며, 장명채는 또한 이 풀로 나물을 만들어 먹으면 오래 산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따라서 채송화는 장수를 표상하기도 한다. 꽃말은 가련, 천진난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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