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실의 문장(나라꽃무늬), 오얏꽃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나라꽃무늬), 오얏꽃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08.3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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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30]

 

▲ 자두나무.   ⓒ송홍선
자두나무는 한자의 자도(紫桃)에서 나온 이름이다. 잎과 열매가 복사나무(복숭아)와 닮았다. 더욱이 열매빛깔은 자줏빛이 많다. 그래서 자도인 것이다.

자두나무는 이(李)라 쓰는 경우도 많다. 우리말로는 자두나무 이외에 흔히 오얏나무라 부른다. 자두나무하면 개인적으로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과 우리 황실의 문장(나라꽃무늬 상징)이 생각난다.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은 우리의 격언으로 즐겨 쓰지만 근원은 중국의 고사 성어에서 유래한다. 즉 중국 한나라 때의 성어로서 ‘과전불납이 이하불정관(瓜田不纳履,李下不整冠)이 근원이다. 뜻풀이는 오이 밭을 지날 때에 허리를 굽혀 신발을 고쳐 신지 않으며, 오얏나무 밑을 지날 때에 손을 들어 모자를 정리하지 않음이다. 지금은 이를 사자성어로 줄여 ‘과전이하(瓜田李下)’로 쓴다.

자두나무의 꽃(오얏꽃)이 우리 황실의 문장으로 쓰게 된 시기와 유래는 분명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1897년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이후로 알고 있다. 사용 동기는 2가지의 상반된 견해가 있다.

첫째는 조선말기 일제가 유럽의 봉건영주나 일본의 지방정부처럼 문양을 상징으로 만들어 강요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용이나 봉황 등의 문양을 무시하고 오얏 이(李)를 강조하여 대한제국의 품위와 권위를 떨어뜨렸다. 즉 조선은 한민족을 대표하는 국가가 아니라 이(李)씨의 일개 가문에 의해 지배되는 왕조라는 뜻이다.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은 대한제국 때에 황제가 외국 사신을 접견했던 건물이며, 용마루에 청동제 오얏꽃 5송이가 박혀 있다. 오얏꽃 문양은 1930년대 일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오얏꽃 문양은 수치이면서 굴욕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이와 정반대로 일본 황실의 상징인 국화 문양에 대항해 오얏꽃 문양을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오얏꽃 문양은 조선말에 고종 그리고 독립협회 관계자들이 중국의 속국이 아닌 사대정치에서 벗어나 독자적 국가라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국호를 바꾸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는 것과 관련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때 인정전의 오얏꽃 문양은 일본인이 설치한 벚나무 꽃(벚꽃)이라 하여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기도 했다. 오얏꽃과 벚꽃의 모양이 너무도 비슷하기에 이 주장도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조선 황실의 문장을 배나무의 꽃(배꽃)으로 잘못 알고 있거나 잘못 쓰고 있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이는 발음이 같은 오얏꽃의 이화(李花)를 배꽃의 이화(梨花)로 착각한 때문이다.

한편 자두나무 중에는 줄기가지가 옆으로 퍼지지 않고 위쪽으로 곧게 올라가는 종류가 있다. 이 종류의 자두나무를 따로 열녀수(烈女樹)라 부르는데, 옛날에는 이 열녀수로 소박을 막는 무속이 있었다.
소박은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겨서 여자가 쫓겨나는 것을 말한다.  옛날 부인들은 이 마귀를 퇴치하기 위해 열녀수로 도끼나 칼 등의 흉기 모형을 만들어 남몰래 늘 치마 속에 차고 다녔다.

자두나무 또는 그 변종의 열녀수는 어린 가지가 밤이 되면 마치 정다운 부부가 나란히 동금(同衾)하는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부부의 사랑을 상징한다.

꽃말은 곤란, 부부애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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