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읽는 서울] 미아 재개발지구
[詩로 읽는 서울] 미아 재개발지구
  • 박성우 시인
  • 승인 2011.10.14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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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의 ‘PoemEssay’

미아 재개발지구
-김기택-

집들이 덤프트럭에 실려간다.
트럭이 느릿느릿 흔들릴 때마다
냉동육처럼 족발과 순대처럼 흔들리며 실려간다.
포클레인이 집을 떠내 트럭에 싣고 있다.
트럭에 실리기를 묵묵히 기다리며
집들은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포클레인이 잘 떠낼 수 있도록
기왓장과 벽돌담, 철근과 변기, 타일과 스티로폼,
깨진 거울과 계란판, 십자가와 콘돔이 뒤엉켜 붙어있다.
연탄 리어카가 겨우 들어가던 골목길도
모과빛 창문이 새어나오던 판잣집도
발걸음 소리만 나면 컹컹 짖어대던 녹슨 철대문도
씨멘트 덩어리 사이에 뒤죽박죽 끼여있다.
아직 도살되지 않은 헌집 몇채가
거대한 집 더미 바로 옆에 서 있다.
오랫동안 떨고 있었는지 유리창이 모두 깨져 있다.
문짝들은 너덜거리거나 떨어져 있다.
‘사람 있음’이란 판자때기를 세워놓고
끝까지 살며 버티던 사람들이 빠져나가자마자
갑자기 늙어버린 집들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을 듯이 서 있다.
‘세입자 주거권도 보장하라’고 데모하던 사람들도
다 떠나고 나니
이젠 포클레인이 툭 건드려주기만 하면
와르르 무너져 즉시 쓰레기가 되어버리겠다는 듯
마지못해 직립하고 있다.
라면봉지, 캔, 우유팩, 생리대와 뒤섞여
집들이 덤프트럭에 실려가고 있다.

작품출처 : 김기택(1957~) 시집 『껌』

■ 누추해도 상관없습니다. 좁아도 상관없습니다. 낡았어도 상관없습니다. 내 집이 아닌 셋방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지친 하루를 곤히 눕힐 아늑한 집이 있다면 말입니다. 눈치 보지 않고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다면 말입니다.
연탄불이 꺼져서 냉방에서 자야했던 시절, 골목이 좁아 변변찮은 가전제품 하나 나르는 것도 버겁던 시절, 라면으로 겨우겨우 끼니를 때우던 시절, 어쩌다 굽는 삼겹살 냄새가 가난한 이웃집으로 새어나가는 게 못내 미안해지던 시절······. 하지만 여전히 힘겹게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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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시인
ㆍ1971년생. 원광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박사학위

ㆍ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ㆍ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면서 아동문학을, 2009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저작 및 출판 지원 사업에 청소년 . 

ㆍ시집『거미』『가뜬한 잠』, 동시집『불량 꽃게』.ㆍ신동엽창작상, 불꽃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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