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쿠샤(DILKUSHA), 희망 샘솟는 이상향 궁전
딜쿠샤(DILKUSHA), 희망 샘솟는 이상향 궁전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 연구간사
  • 승인 2011.10.1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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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각순의 서울문화유산 둘러보기-53]

딜쿠샤 건물은 종로구 행촌동 1-88·89번지에 위치한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근대식 서양건물이다. 그 입구 행촌동 1-113번지에는 수령 420년의 은행나무가 있다.

이 나무로 인하여 일대 마을을 은행동·은행나무골이라고 불렀는데, 인근의 새말 즉 신촌과 합하여 행촌동이라는 동명이 유래되었다. 이 은행나무는 높이 23m 흉고둘레 6.8m 직경 2.2m나 되는 노거수로서 1976년 6월 5일 서울특별시 보호수 서1-10호(행촌동 1-18번지 위치)로 지정되었다.

이 은행나무는 권율(權慄) 장군이 직접 심었다고 하며, 이곳에 권율 장군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은행나무 바로 위쪽 구릉이 사적 제10호 서울 한양도성 인왕산과 돈의문을 잇는 구간에 해당된다. 

은행동은 한때 개미마을이라고 불렀는데,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폐휴지를 수합하여 생계를 유지하던 자립단(自立團, 혹은 자립부락민)들이 집단 거주하였던 곳이다. 이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마치 개미 같아서 ‘개미마을’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1980년을 고비로 이 일대가 정비되자 어느 정도 재산을 모은 사람들이 하나 둘 보금자리를 떠나게 되어 마을 이름만 전설처럼 남아있다. 한편 독립문 동쪽 대신고등학교에서 사직단으로 넘어가는 언덕마루에 있던 돈대를 연향대(燕享臺)라고 불렀다.

이 연향대는 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맞아들이는 모화관(慕華館) 동쪽 언덕마루가 되어, 이 부근 사람들이 중국 사신의 행렬과 조정대신들이 사신을 맞이하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던 곳이다. 송림이 울창한 놀이터로도 이용되었음으로 ‘연향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연향대 밑에 있던 ‘연향대우물’은 물맛이 좋고 수량이 많아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달쿠샤는 3·1운동 소식을 전 세계로 타전한 금광엔지니어 겸 UPI통신사 프리랜서 특파원이었던 알버트 W. 테일러(Albert W. Taylor)가 1923년 집을 짓고 1942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될 때까지 가족과 함께 살던 곳이다.

▲딜쿠샤 건립 시기를 알 수 있는 명문.
알버트는 3·1운동 당시 누군가 그의 갓난아이였던 아들 브루스 테일러의 침대에 숨긴 <3·1독립선언서>를 발견하고, 그 선언서를 숨겨 도쿄로 건너가 독립선언서의 발행금지조치가 내려지기 전 독립선언서 내용을 실은 기사를 미국으로 전송했다.

그는 그 외에도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을 보도하고 조선총독부에 항의하고, 일제의 만행이 담긴 사진들을 총독에게 보내 학살을 중지시키는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왔던 그는 이것이 이유가 되어 6개월 간 서대문형무소에 수용생활을 하기도 하였으며, 1942년 미국으로 추방되어 1948년에 미국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죽음에 임하여 ‘나의 유골을 사랑하는 코리아로 가져가 묻어 달라.’는 유언을 하였다. 이렇게 알버트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다가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당하였고, 미국에 돌아가 한국을 그리워하다가 세상을 떠났지만, 한국에 묻히기를 희망하여 마포구 합정동 144번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지공원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묻히게 되었다.

한편 딜쿠샤 건물은 누가 건축하였는지 의견이 분분하였고, 한때 대한매일신문 사옥으로 전해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알버트의 아들로 바로 3·1독립선언서가 숨겨졌던 침대의 주인공인 갓난아이 브루스 테일러가 6세까지 살았던 이 고향집을 찾아와 이 집의 내력을 증언함으로써 건물의 실체가 밝혀졌다. 

알버트의 아들 브루스는 그의 나이 90세 기념으로 자서전 《은행나무 옆 딜쿠샤》를 펴내고 2006년 한국을 방문하였다. 이때 그의 가족 이야기와 가족이 살던 집 ‘딜쿠샤’가 세상에 정확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딜쿠샤’란 이름은 알버트 테일러의 부인인 배우 출신의 메리(Merry)가 어려서 인도의 ‘딜쿠샤 궁전’을 보고, 인도 힌두어로 ‘행복한 마음’ ‘이상향’ ‘희망’의 뜻을 가진 ‘딜쿠샤’ 궁전을 꿈꾸며 집을 짓고, 그 머릿돌에 ‘DILKUSHA 1923’이라고 새긴 데서 유래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서울특별시에서는 66년 만에 서울 고향집 ‘딜쿠샤’를 방문한 당시 갓난아이 브루스 테일러에게 2008년 명예시민증을 수여하였다. 그리고 한국을 사랑한 알버트 테일러의 일생과 그 일가 족적을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나라’로 제작하여 방영하였다.

그러나 딜쿠샤의 현실은 전혀 행복한 마음이나 이상향적이나 희망감을 갖기에는 매우 큰 거리감이 있다. 그간 국가소유로 방치되어 있어 10여 가구의 무허가 살림이 생활하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출입문 옆에 “국유재산 소유지: 서울 종로구 행촌동/ 본 토지 건물은 국민의 소중한 나라재산으로 허가 없이 사용할 경우에는 변상금 부과 처분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소중한 나라 재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아직도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딜쿠샤에는 지금 여러 가구가 살면서 장독대가 놓여 있고, 여름·가을철에 금잔화 등 아름다운 꽃들이 심어진 화분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리고 연립주택 모습의 건물 둘레에는 검붉은색의 도시가스관이 둘려져 있어 오밀조밀 사는 일상생활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그리고 건물의 붉은색 벽돌은 명동성당을 비롯한 근대건축물의 자재로 쓰였던 것과 비교되는데, 앞으로 건물의 구조와 규모 등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정비하여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하여 행복을 찾아가고, 주민들이 연향하는 놀이터였으며,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왔던 미국인이 주거를 마련하였던 이상향이 바로 서울 한양도성 밖에 인접해 있는 이곳이었다. 그리고 이 터는 모두 권율 장군이 고명딸의 낭군인 백사 이항복(李恒福)에게 필운동 집을 내주고 마음을 비우며, 새로 마련한 집터에서 연유된 것이니, 우리는 오늘에 사는 지혜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딜쿠샤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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