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읽는 서울] 영등포가 있는 골목
[詩로 읽는 서울] 영등포가 있는 골목
  • 박성우 시인
  • 승인 2011.10.22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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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의 ‘PoemEssay’/ 정호승(1950-)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

 

 

 

 

 

 

 

영등포가 있는 골목

영등포역 골목에 비 내린다
노란 우산을 쓰고
잠시 쉬었다 가라고 옷자락을 붙드는
늙은 창녀의 등뒤에도 비가 내린다
행려병자를 위한 요셉병원 앞에는
끝끝내 인생을 술에 바친 사내들이 모여
또 술을 마시고
비 온 뒤 기어나온 달팽이들처럼
언제 밟혀 죽을지도 모르고 이리저리 기어다닌다
영등포여
이제 더이상 술을 마시고
병든 쓰레기통은 뒤지지 말아야 한다
검은 쓰레기봉지 속으로 기어들어가
홀로 웅크리고 울지 말아야 한다
오늘밤에는
저 백열등 불빛이 다정한 식당 한구석에서
나와 함께 가정식 백반을 들지 않겠느냐
혼자 있을수록 혼자 되는 것보다는
혼자 있을수록 함께 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마음에 꽂힌 칼 한자루보다
마음에 꽂힌 꽃 한송이가 더 아파서
잠이 오지 않는다
도대체 예수는 어디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가
영등포에는 왜 기차만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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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저녁으로 날이 부쩍 쌀쌀해졌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집으로 가는 저녁 버스를 기다리다보면 뜬금없이 뜨끈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잔이 간절해지기도 합니다.
적당히 고픈 배 채우면서 한잔 술에 세상 시름을 잠시 내려놓고 싶기 때문이겠지요. 더구나 생각이 많아지는 가을이니까요.
영등포역. 아랫녘에 다녀올 일이 있을 때면 저도 종종 영등포역을 애용합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그곳에서 “끝끝내 인생을 술에 바친 사내들”을 만나게 되지요.
그 취한 사내들에게 있어 영등포역이 삶의 ‘종착역’이 아닌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출발역’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더 늦기 전에 말이지요.

글: 박성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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