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의 ‘PoemEssay’
돈암동 시장 파 할머니
최동호
시장 어귀 모퉁이에
매일 아침 가게에 나와 파를 다듬는
할머니가 있었다 일 년 내내
고개를 들지도 않고
파를 다듬는 할머니는
오직 파를 다듬기 위해 사는
것처럼 매일 아침
채소가게 어귀에 나와
머리가 하얀 파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한 번도 고개를 들어 행인을 보지도 않고
언제나 구부린 자세로
파를 다듬기만 하던 할머니가 어느 날
꽃샘바람 지나가는
시장 어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다듬은 파처럼 깨끗한 얼굴에
고운 티가 가시지 않은
채소가게 할머니 작은 얼굴에서
흘낏 돌처럼 강인한
우리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작품출처 : 최동호(1948-) 월간『현대시학』
■ 어머니는 속상한 일이 있으시면 꾹 참았다가 쪽파나 대파를 잔뜩 꺼내놓고 다듬으면서 말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죠.
‘엄마, 울어?’ 하면은 ‘울기는 누가 운다고 그냐, 파가 매워 그런 게지.’ 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하고는 했죠.
여직 선명하게 생각나요.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우리 어머니를 누군가가 ‘할머니!’라고 처음 부르던 때.
오오, 지금은 늙어 할머니가 된 당신과 나의 어머니, 세상 모든 이의 어머니!
‘사랑’이라는 말보다도 더 애틋한 말 하나를 꺼내들라면 저는 주저 없이 ‘어머니’라는 말을 꺼내들겠어요.
오늘은 잊지 말고 어머니께 안부전화라도 한통 꼭 넣기로 해요.
바로, 지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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