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시장과 이미지정치의 유혹
신임 시장과 이미지정치의 유혹
  • 서울타임스
  • 승인 2011.11.0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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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틀째인 지난달 28일 주요 언론은 일제히 박 시장의 도시락 미팅 뉴스를 전했다. 박 시장이 이날 오후 집무실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예산 업무보고를 받을 예정이란 소식이다.

여러 매체는 친절하게도 “오후 6시부터 집무실에서 소관 실·국장이 참석한 가운데 도시락 미팅을 겸한 예산 업무보고가 실시된다”는 서울시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이런 일정을 전한 서울시 관계자들은 내심 새 시장의 헌신적인 시정 추진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에 앞서 박 시장은 취임 이틀째까지 지하철로 출근하며 시민들과 사진을 찍는 등 서민적 행보를 보였다.

당시에도 많은 언론은 박 시장이 지하철 출발이 지연되자 정상적으로 운행하라고 했다는 소식을 비중있게 전했다. 또 서울시장 의전차량인 에쿠스를 타지 않고 당분간 대중적인 SUV 차량인 카니발을 전용차량으로 이용한다는 뉴스도 나왔다.

시민운동의 대부로 불리며 서민층을 위한 사업에 주력해온 박 시장의 전력에 비추어 그리 어색하지 않은 행보다. 그가 취임 일주일 동안 추진한 정책들도 초등학교 무상급식 전면시행, 공공요금 인상 연기 등 서민을 배려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러한 정책추진과 소탈한 면모는 시민단체 출신 시장의 정체성을 시민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쯤에서 지나친 이미지 홍보는 자제하는 편이 좋다. 물론 언론의 서민 시장 띄우기가 박 시장의 의도에서 시작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부 극우성향의 매체를 제외한 언론은 일정기간 새로 선출된 서울시장과의 밀월기간을 갖게 된다.

최근 잇따른 세세한 박 시장 동정 보도는 이런 밀월기간에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걱정되는 대목은 박 시장이 자신의 의도와 무관한 이미지 만들기의 늪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앞서 예로 든 도시락 미팅은 서울시 공보 담당자들이 보도자료를 만들어 기자들에게 배포해 ‘만들어낸 기사’다. 관료들이 앞장서서 새 시장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해 꺼내들고 언론은 밀월기간을 핑계로 이를 어느 정도 부풀려 시민들에게 전하는 시스템이다.

이와 같이 부풀려진 이미지가 박 시장의 시정 전체를 규정하고 하나의 틀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시민들도 연일 이어지는 새 시장의 언행을 지켜보며 자칫 만들어낸 뉴스 속의 이미지에 현혹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박 시장 자신이 관료들의 지나친 홍보를 제어하지 못하고 서울시 시정 전체를 실체가 없는 이미지만으로 포장하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박 시장은 취임 후에도 그동안 내놓은 공약이 원칙론만 있고 각론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여기에 관료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정치의 틀만 덧 씌워지면 박 시장 자신에게도, 서울시민에게도 득 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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