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읽는 서울] 다시 도봉(道峰)에 살면서
[詩로 읽는 서울] 다시 도봉(道峰)에 살면서
  • 박성우 시인
  • 승인 2011.11.0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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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의 Poem Essay

다시 도봉(道峰)에 살면서

                              박정만

물굽이 눈에 돌고
귀울음 새로 돋아나는 나날이여.
잠 아니 오는 밤 날로 길어지고
풀섶에 무서리 깊어지면 어이하리.
기러기 짝하여
스스로 흘러가는 하늘 위의 때,
서러운 어린것들
제 품에 품어가는 우리들의 때,
아내여,
물 젖은 네 낯바닥의 주근깨에
두릅나무 새순 같은 어린 것을 붙이고
말없이 돌아서서 도봉(道峰)을 본다.
청수장(淸水莊) 맞은편 그늘목의
내가 앉던 그 자리,
햇발에 그늘이 조금씩 넓어졌으니
아내여, 서리 묻은 울음발
발 아래 두고
발걸음 새로 하여 산에 들어라.
이윽고 해거름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산자락이 단정한 품(品)으로 깃을 접으면
사랑이 제철을 품어보는
달무리 허리 두른 우리들의 옥빛 꿈자리.
내 또래의 젊은것들 의좋게 산에 오르듯
도봉(道峰)과 짝하여 마주 서는
너와 나
우리들 길동무의 짝,
어린것들 쑥잎처럼 새로이 짙어오리니.

작품출처 : 박정만(1946~1988) 시집 <잠자는 돌>

■ 박정만(朴正萬)은 1988년 43세의 젊은 나이로 작고한 시인이지요. 1981년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다 먼 길 떠난 시인이지요.
1987년에는 20여 일 동안 무려 300여 편의 시작품을 쏟아내어 문단 안팎을 놀라게 하기도 했고요.
“사랑이 제철을 품어보는 / 달무리 허리 두른 우리들의 옥빛 꿈자리” 다시, 도봉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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