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에 캔디?’
‘내 귀에 캔디?’
  • 이승희
  • 승인 2011.11.11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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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의 소통과 관계]

오남매가 한 동네에 사는 덕분에 주말 저녁이면 가끔 이집 저집 모여 열댓 명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딸 방에서 놀고, 남자들은 서재에서 고스톱, 언니들과 나는 거실에서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수다의 화제는 우리나라 정치, 경제에서 시작해 드라마의 멋진 남자 주인공을 거쳐 집안 식구 이야기로 순환한다. 털털하고 엉뚱한 구석이 많은 남편, 그리고 남편을 쏙 빼 닮은 우리 딸은 내게 심심찮게 수다꺼리를 제공한다.

집안이 시끌벅적해 평수가 넓진 않지만 같은 공간이 아니면 무슨 얘긴지 잘 들리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 딸은 자기 얘기만 나오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뛰어나와 내 입을 틀어막는다. 우리 남편도 마찬가지다. 본인 흉보기를 시작하면 연신 ‘승희 씨’를 크게 외쳐 중단시킨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칵테일파티처럼 시끄럽고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관련된, 혹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잘 듣는다. 여러 소음 속에서도 자기에게 의미 있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잘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칵테일파티 효과’라 하는데 1953년 콜린 체리(Colin Cherry)가 처음 이름 붙였다.

우리는 흔히 소리는 귀로 듣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소리를 듣는 것은 귀가 아니라 뇌이다. 이는 보는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뇌는 자연스럽게 본인이 듣고 싶고 보고 싶은 정보만을 편향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뇌의 왜곡으로 인해 실제 존재하는 현실과 엄연히 다르다. 늘 편향되지 않게 정보를 습득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아울러 뇌의 자연스러운 선택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스스로가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행하는 선택적 듣기이다. 내게 불편한 사실이나 뼈있는 교훈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 ‘편청’ 말이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집 안팎에서의 권위가 커질수록 자신의 주장과 고집을 지지해주는 달달한 얘기가 반갑고 좋다. 조언이나 충고 혹은 반대 의견은 듣기도 싫고 무척 거슬린다.

그러나 내 귀에 캔디를 너무 애창하면 남들이 미리 선택적 들려주기를 하게 되어 스스로에게 갇힐 수 있다.

겸청즉명(兼聽則明) 편청즉암偏聽則暗), 마음을 열고 넓게 들으면 총명해지지만 듣기 좋은 말만 가려들으면 사리에 어두워 헤매게 된다는 것을 늘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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