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삼’의 그늘이 걷히지 않은 종로구 돈의동 쪽방골목
‘종삼’의 그늘이 걷히지 않은 종로구 돈의동 쪽방골목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1.11.11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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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개발 미치지 않은 피맛골 안쪽 동네, 남루한 하루가 저물고…

옛 서울의 흔적이 빠르게 지워지고 있다.
상민들이 종로 큰 길의 고관대작 행차를 피해 오가던 피맛골은 높이 100m 이상되는 빌딩에 밀려 이름만 남았다. 서울의 도심개발은 얼마나 높이 올리고 얼마나 깊이 파느냐로 결정된다.
지상 30층 이상, 지하 6층 이상의 빌딩을 짓는데 채 1년이 걸리지 않는다.
이런 개발에 따라 드리우는 빌딩 그림자는 가뜩이나 햇볕이 들지 않던 뒷골목을 완전히 덮어버린다.

서울의 옛 골목은 하나씩 하나씩 자취를 감춘다.

종로구 낙원상가 뒤쪽에서 창덕궁 돈화문 맞은 편 운니동까지 이어지는 뒷골목은 그나마 아직 옛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다. 옛 모습이라고 해서 무조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돈의동 뒷골목은 여름철에는 종로구청의 쪽방촌 방역 소식으로, 가을에는 도시가스 정비로, 겨울이면 화재예방을 위한 난방시설 점검 소식으로 세간에 알려진다.
또 하나, 선거철이면 각 후보의 친서민 행보의 무대로 각종 매체에 오르내린다.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어김없이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돈의동 뒷골목을 찾았다.

한 평(3.3㎡)이 채 되지 않는 돈의동 쪽방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애환을 듣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돈의동 뒷골목을 찾는 인사들은 세입자보다는 집 주인을 만나보고 훌쩍 자리를 뜬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다시 쓸쓸한 바람만 남는다.

▲ ① 종로구 낙원상가 뒤쪽에서 창덕궁 돈화문 맞은 편 운니동까지 이어지는 뒷골목은 그나마 아직 옛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다.② ③ 쪽방촌의 남루(襤樓)는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바깥쪽으로 나갈수록 점점 옅어진다. 하지만 가난한 일상의 꼬리는 큰 길을 건너기 전까지 떼어내지 못한다. (사진 위쪽부터)
체제공 형제 우애 나누던 옛 마을

돈의동에는 조선 명재상인 체제공과 그의 아우 체제민이 우애를 쌓으며 살던 곳이었다는 지명유래가 남아있다.

창덕궁을 마주하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흥선 대원군이 살던 운현궁이 있던 마을은 한양의 지체 높은 양반들이 살았을 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 돈의동 일대는 땔감을 파는 시탄시장(柴炭市場)이 들어선다. 1936년 시장은 문을 닫고 한국전쟁 후에는 사창가가 되고 만다.

지금도 50대 이상 연령층이면 기억하는 ‘종삼’이 바로 지금의 쪽방촌 골목이다. 전후 피폐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도시로 흘러들어온 여인들이 몸을 팔았던 골목은 이제 월 40만 원의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사람들이 몸을 누이는 곳이 됐다.

쪽방촌의 남루(襤樓)는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바깥쪽으로 나갈수록 점점 옅어진다. 하지만 가난한 일상의 꼬리는 큰 길을 건너기 전까지 떼어내지 못한다.

절반 가격 맛집 찾는 서울 봉급쟁이들

돈의동 남쪽 끝, 낙원상가의 동쪽 옆 골목까지는 요즘 가장 싼 식당 밥값의 절반 수준인 백반집이 손님을 맞는다.
또 한쪽으로는 점심시간마다 값싸고 푸짐하기로 유명한 두 곳의 칼국수집 앞에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장사진을 친다. 이곳 칼국수집들도 몇 해 전부터 치솟는 밀가루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격을 올렸지만 아직 다른 지역보다는 2000원 정도 싼 편이다.

이름난 칼국수집인 만큼, 말쑥한 정장을 입은 넥타이 부대와 명품으로 치장한 아가씨,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한 자리에 앉아 젓가락질을 한다.
일찌감치 어둠이 깔리는 저녁이면 골목 끝 돼지고기집 앞으로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인근 사무실에서 퇴근한 월급쟁이들이 종로 뒷골목의 싼 안주값을 찬양하며 너도나도 삼겹살이며 목살이며 갈매기살을 굽는다.

▲ 돈의동 남쪽 끝, 낙원상가의 동쪽 옆 골목까지는 요즘 가장 싼 식당 밥값의 절반 수준인 백반집이 손님을 맞는다.
나이 지긋한 월급쟁이들은 날이 갈수록 낮아지는 소주의 알코올 도수를 한탄하기도 하고, 해를 거듭할수
록 떨어지는 실질소득을 원망하며 술잔을 비운다.

그래도 이렇게 고기를 구우며 소주잔을 나누는 이들은 이 동네 안쪽에서 혼곤한 잠자리를 펴는 쪽방촌 사람들보다 훨씬 윤택한 삶을 산다.
고깃집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골목을 타고 쪽방의 얇은 문틈을 비집고 들어가면 차가운 바닥을 전기장판 하나로 가리는 노인들의 마음은 더 휑해진다.

글=이인우 기자 rain9090@seoultimes.net
사진=이원배 기자 c21wave@seoul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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