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철공소골목 옥상에 머무는 초록빛 햇살’
‘문래동 철공소골목 옥상에 머무는 초록빛 햇살’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1.11.11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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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성환경연대 이보은 대안생활위원장

▲ 문래생태텃밭을 일군 이보은 여성환경연대 대안생활위원장은 직접 가꾼 배추 한 포기가 주는 위안을 더 많은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어한다. (사진 : 이원배 기자)
다섯 평(16.5㎡)짜리 옥상에는 다섯 평의 햇볕이 비치고 열 평짜리 옥상에는 열 평 넓이의 햇볕이 머문다.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골목 끝, 50평 남짓의 낡은 3층 건물 옥상에도 딱 그만큼의 햇살이 내려앉는다.

하지만 이 옥상에 머무는 햇살은 그보다 훨씬 넓고 깊다. 다른 옥상과 달리, 이곳에서는 봄, 여름, 가을 긴 계절 동안 쉼 없는 광합성이 이루어진다.

1000평 넘게 넓어지는 손바닥만한 텃밭
젊은 예술가들과 시작한 작은 일의 진화
저마다 자신의 자산 내놓는 마을 공동체

크지 않은 나무 상자마다 건강한 흙이 채워져 있고 그 흙에 지렁이가 꼬물거린다. 그리고 흙이 품고 있는 양분을 빨아들인 배추며 무며, 파, 부추 등이 무럭무럭 자란다. 이런 옥상을 일군 도시 농사꾼들의 ‘바람잡이’는 이보은 여성환경연대 대안생활위원장이다.

이 위원장은 넓지 않은 옥상을 순식간에 100평짜리로 탈바꿈시킨다.

“이 옥상 면적이 얼마나 되냐구요? 100평 정도는 충분히 될걸요.” 그는 ‘하하하’ 웃음으로 말끝을 뭉갰다.

“우리는 모두 100평이라고 우긴답니다. 실제 넓이와 상관없이 말이죠.”

이 위원장이 말하는 ‘우리’는 박정자 여성환경연대 생태텃밭 교육활동가와 10여 명의 문래동 생태텃밭 운영위원들, 그리고 수시로 이곳 작은 옥상을 기웃거리는 동네주민들이다.

지난 4월 시작한 문래동 생태텃밭은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옥상을 가꾼 ‘문래도시텃밭 공동체’는 지난 6일 서울시가 주최한 ‘2011 시민참여 생활녹화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서울시는 이번 경진대회에서 ‘텃밭공동체’와 ‘우리동네 푸르게’라는 2가지 주제를 내걸고 65개 사례를 심사, 문래도시텃밭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

이런 상을 받았다고 해서 문래동 낡은 건물 옥상의 생태텃밭이 조경적으로 우수하거나 규모가 큰 것도 아니다. 그냥 시멘트 바닥 옥상 한 가운데 비닐하우스 한 동이 능청스럽게 세워져 있고 앞뒤로 자루 비슷한 흙주머니와 나무상자가 널려있다.

그리고 그 흙주머니와 나무상자마다 놀랍게도 농약 한 방울, 비료 한 톨 묻지 않은 갖가지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란다. 그들이 바로 50평짜리 옥상을 100평짜리로 넓힌 주인공이다. 아니, 실제로는 100평이 아니라 1000평, 1만평일수도 있다.

왜냐 하면 이 채소를 중심으로 문래동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 신나는 공동체를 이루고 멀리 홍익대 인근과 양재동에 사는 시민들도 달려오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이러한 현상을 이끌어낸 생태텃밭에 대해 재미있는 모델이라고 말한다.

“생태텃밭은 서울의 다양한 사회자원을 서로 연결시켜주었습니다. 학생들과 주민의 연결을 이끌어내 텃밭 운영에 참여하도록 했지요. 사람들이 각자 가진 가장 좋은 자산을 내놓아 서로 돕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가치를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처럼 거창한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문래동에 생태텃밭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당초 문래생태텃밭 아이디어는 일본 도쿄의 ‘슬로 비즈니스(Slow Business)’에서 얻었다. 도쿄에서는 자신이 가진 자산의 절반을 작은 농사일에 투자하고 남은 절반을 즐기는 ‘반농 반χ’ 운동이 시작됐고 대학을 졸업한 뒤 기업에 취직하는 대신 콩 농사를 지어 유부초밥을 만들어 파는 청년들이 생겨났다.

이 위원장은 이같은 일본의 사례를 보며 ‘좀 덜 불안한 삶의 구조’를 생각했다고 한다.

“문래동의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슬럼화된 도시를 녹색화하면서 좀 더 여유로운 삶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와 같이 문래동 생태텃밭의 출발은 이 지역에 깃들어 사는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작은 사업이었다.

젊은 화가니 조각가니 음악가들에게 농사를 가르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도록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처음 목적과 전혀 다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서울 사람들이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울 뭔가를 채우기 위해 얼마나 헤매는지 알게 됐지요.”

텃밭이 만들어지자 인근 철공소 사장부터 분식집, 백반집 주인, 대학생들이 하나 둘 찾아들었다. 특히 나이 지긋한 주민들은 다짜고짜 언성을 높이며 참견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돕던 농사일을 꺼내들었다. 그들의 지나친 간섭과 시비가 처음엔 큰 부담이었다.

“나중에 그런 참견들이 관심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런 다음부터 모두 텃밭을 함께 가꾸는 공동체 가족이 됐습니다.”

이 위원장은 이런 공동체적인 삶이 거침없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도시에서 삶에 찌들어 강퍅해진 이들도 작은 텃밭에 오면 한 없이 너그러워지고 온화해졌다. 그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스스럼없이 나눔을 베풀었다.

누구는 종묘사를 통해 씨앗을 기증했고 누구는 목초액을 얻어주기도 했고 심지어 분식집 사장님은 직접 옥상에 비닐하우스를 지어주기도 했다. 텃밭을 직접 찾는 이들뿐만 아니다. 문래생태텃밭 네이버 카페를 들락거리는 ‘눈팅족’들은 자기들끼리 텃밭 결의를 한 뒤 각자 집에서 채소를 키우기도 한다.

“이번 토요일(12일)에는 텃밭에서 키운 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글 예정입니다. 이를 또 다들 나누어 가질 김장잔치 생각에 벌써부터 들뜬 분위기랍니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텃밭에서 얻은 채소를 영등포구 ‘달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는 등 여러 차례 수확의 기쁨을 맛보았다고 한다. 그런 이 위원장에게 서울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청했다. 이 위원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찬찬히 말했다.

“농사는 어려운 게 아니고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일입니다. 문래생태텃밭은 열린 공간이기 때문에 누구든 환영합니다. 또 이런 옥상 공간을 내주는 건물을 찾아 생태텃밭을 더 늘릴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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