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순간을 조형성으로 탐색한 이강욱
깨달음의 순간을 조형성으로 탐색한 이강욱
  • 정민희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1.11.11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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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희의 마음으로 미술읽기] ⑪
▲ 이강욱_untitled-11031_160x95cm_2011.

현대미술에서 언젠가부터 물감만이 아닌 오브제가 캔버스와 결합하게 된다.
평면을 벗어나려 눈에 띄게 큰 오브제를 붙이는 경우 아니면 규칙적인 배열에 치우쳐 회화성을 다소 숨겨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

색감, 점, 선, 면, 형태 중 단일한 목적으로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요소들의 완벽한 융합에서 구성되는 작품이야말로 내공과 철학과 방향성이 설정된 작가가 아닐까 싶다.

7년 전 추운 겨울날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간과의 조화, 컬렉터의 흡족함을 염두에 두고 미래성이 엿보이는 젊은 작가 헌팅을 위해 기대 반으로 어둑어둑한 인사동 길을 나갔다. 나로서는 머리에는 세련된 컬렉터의 아트컨설팅 의뢰에 첫 단추를 만족시켜주고자 미리 수백 점의 작품을 만났다.

마음이 확 쏠리며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공간과 미술의 완벽한 만남’을 주선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멋진 이상형의 이성을 만나는 것과 비교가 안 될 만큼 근사하고 감사한 사건이다. 몇 년에 한번 오는 행운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 이강욱_untitled-11101_50_x_40cm_2011.
캔버스화면 전체에 뿌려진 조명과의 적절한 관계, 노련한 연필드로잉의 방향성에서 느껴지는 긴장 속에서의 이완.

생명체의 기본단위인 세포이미지를 확대에서 느껴지는 무한한 우주의 기운위에 섬세하고 아름답게 흐름을 연결하는 반짝임이 무한 감각을 보여주었다.

예술적 감각은 물론이고 그 토대위에 쌓여진 자기철학을 연구하며 작업으로 풀어나가는 인고의 과정 또 묵묵히 지켜보고 기다리는 애호가, 미술이 주는 기다림의 미학이 아닐 수 없다.

빠르게 화풍이 변하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며 단계를 바로잡고 급상승만 하는 것도 작가를 압박하는 요소이다.

현대미술의 중심이 된 런던으로 2년 전 훌쩍 떠나 다른 환경에서 짧은 시간에 ‘Untitled’라는 큰 변화를 가지고 이강욱작가가 근작을 선보인다. 첫 느낌은 아주 강해졌다.
쌀알처럼 작은 원형으로 농담을 조절하면서 반원 또는 뚜렷한 선은 시선의 방향을 설정해주며 우연이 아닌 계획된 화면구성임을 인지할 수 있다.

이강욱 작가는 과거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에서 최근 인도철학 ‘우파니샤드’에서 비롯된 불변의 원칙과 감성적 감정 두가지가 일치함이 완전무결한 존재로 나아가는 것에 기반을 두었다.

새롭게 복합적인 조형성의 융합에서 표현된 무한한 자유의 삶이 느껴지는 추상회화와의 만남이 가을의 끝을 사색의 강으로 흠뻑 빠지게 한다.

■11월 25일까지. 노화랑 02)732-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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