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둔 무농약 채소 식탁에
오늘 거둔 무농약 채소 식탁에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1.11.25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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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도시농부 박덕삼·문홍기·전왕규·최재일 씨
▲ 박덕삼 씨.

도시 농부들은 친절했다. 시골 인심도 각박해졌다는 세태 이야기는 남의 일이었다. 서울특별시 강동구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 박덕삼(50) 씨와 전왕규(43)·최재일(37) 씨.

마침 경기도 양평군의 시설농가 지원을 위해 자리를 비운 문홍기(50) 씨도 마찬가지로 친절하고 부드러운 인상일 게 틀림없다.

이들 4명의 농부는 지난 15일 강동구 둔촌동 뒷골목에 ‘강동도시농부’라는 가게를 열었다. 강동구청의 지원을 받는 사회적기업이다. 회사의 정식 이름은 ‘농업회사법인 강동도시농부(주)’라고 지었다.

세상 사람들은 먼저 ‘도시농부’라는 이름에 솔깃했다. 서울에 농사만 짓는 전업농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해했다.

이런 시선은 ‘몰라도 너무 모르는’ 서울사람들의 오해에서 비롯됐다. 고덕동에서 15년째 농사를 짓는 최 이사는 “우리 농장 바로 앞에 사는 주민들도 이웃에 농사꾼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며 웃었다.
이들은 그러나 이미 농사 잘 짓기로 소문난 농사꾼들이다. 가락시장 농산물공판장 경매에서 매번 최고 등급을 받고 최고가로 작물을 출하한다. 박 대표와 3명의 이사뿐만 아니다. 강동도시농부의 든든한 밑천인 강동구 친환경 농가 62곳을 일구는 농사꾼들 모두 경쟁력 높은 작물을 시민들에게 공급한다.

박 대표는 이러한 자산이 있기에 사회적기업 강동도시농부를 세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동구에서 친환경 농사짓는 베테랑 농부들의 도전
생산자와 소비자 직접 연결하는 로컬푸드 밑그림
지역 어린이집부터 건강한 먹을거리 공급 체계화


그는 “우리 강동도시농부는 생산자가 직접 재배한 채소 등을 판매하는 가게로서 의미를 갖는다”며 “그날 수확한 싱싱한 채소를 당일 시민들에게 전한다는 점에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와 차별화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둔촌동 가게와 강동구의 여러 농장은 자동차로 불과 15~20분 거리라고 한다. 마치 시골 텃밭에서 열무며 부추며 상추를 뜯어 저녁 찬거리를 삼듯 강동 주민들은 언제라도 싱싱한 채소를 구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우리 땅에서 나는 친환경 농산물을 강동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먹이고 장기적으로 올바른 로컬푸드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로컬푸드가 주는 편익은 무궁무진하다. 가까운 이웃에서 땅을 일구는 농부들이 친환경 농산물을 싼 값에 공급하고 이를 먹는 어린이와 주민들은 보다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이 확장될 때 먹을거리를 매개로 한 지역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이를 위해 도시농부들은 일정부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최 이사는 “전과 같이 하면 100원을 얻을 일을 죽자고 일하면서 10원 만 벌자고 하는 짓”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90원은 그러나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보다 큰 가치로 차곡차곡 쌓여 개별 농가가 아니라 강동지역 전체를 풍요롭게 한다는 믿음으로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이들 4명의 강동도시농부 설립자들은 지난해부터 자신들이 생산하는 친환경 농산물을 이웃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꿈을 얘기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4월 강동구가 문을 연 ‘사회적기업 아카데미’에 함께 참여하면서 꿈을 구체화했다.

‘사회적기업 아카데미’는 강동구청과 희망제작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강좌다. 강동도시농부는 이번 ‘사회적기업 아카데미’의 제1호 농업기업이 됐다.

최 이사는 “강동의 농부들은 이미 판로를 충분히 확보한 상태”라며 “그렇지만 원가가 뻔한 농산물에 터무니없는 마진을 붙여 비싸게 파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갈 때마다 짜증이 났다”고 말했다.
어차피 가까운 이웃들인 소비자에게 보다 좋은 농산물을 싸게 공급하고 싶다는 농사꾼의 오기가 발동했다. 이렇게 일을 벌이는 바람에 올 여름, 이들은 몇 배의 땀을 흘려야 했다. 본업인 농사일 말고도 회사 설립과 전국 친환경 농가들과의 연대도 구축해야 했다.

▲ 강동구 둔촌동의 강동도시농부 가게에서 당일 수확해 판매하는 채소를 살펴보는 박 대표(왼쪽)과 전왕규·최재일 이사.
앞으로의 일도 쉽지만은 않다. 박 대표는 “그동안 주력해온 쌈채소나 허브뿐만 아니라 반찬거리로 많이 찾는 알타리 무, 파, 얼갈이배추 경작도 늘려야 할 판”이라며 “그래도 일을 좀 더 하면 보다 나은 농산물을 시민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단단히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와 3명의 이사는 올 겨울이 지나면 강동도시농부 가게가 더 바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겨울철에 20~30가지 정도인 생산품목이 봄이 되면 과채까지 더해 60여 가지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로컬푸드라는 사업 성격상 다품종 소량생산이 불가피하고 농부들만 더 바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만만하다. 최 이사는 “강동의 농부들과 경기도의 친환경농가와의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하면 충분한 유통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강동도시농부의 큰 그림은 지역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 급식을 책임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를 위해 급식유통망 구축과 꾸러미사업에 전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먼저 강동구의 어린이집 80여 곳에 친환경 먹을거리를 공급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초등학교는 이미 친환경 무상급식이 이뤄지고 있지만 어린이집은 아직 비율이 낮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공급할 계획으로 당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꾸러미사업은 일주일에 한두 차례 각 가정에 필요한 식재료들을 ‘꾸러미’로 배달해주는 일이다. 최 이사는 “본격적인 꾸러미사업 준비를 위해 홈페이지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며 “앞으로 친환경 농산물의 소비 확대를 위해 레시피 연구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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