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의 인권침해, 용납 안돼”
“언론사의 인권침해, 용납 안돼”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1.12.02 00: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남성우 이사장
▲ 남성우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언론인권센터가 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창립 10주년 기념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2002년 1월 문을 연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는 10년 동안 언론이라는 권력을 감시하고 피해자를 돕는 활동을 펼쳐왔다.

또 아직 우리 사회에 생소한 언론피해구제라는 영역을 서울시민들에게 알리는 교육활동까지 벌이고 있다.

언론은 이제 권력이다. ‘언론의 자유’라는 방패 뒤에서 쏟아내는 수많은 기사는 정치·경제 권력을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때로는 단단한 방패 속에서 불쑥 나와 시민을 찌르는 로마군의 검이 되기도 한다. 신문이나 방송 기사를 통한 명예훼손과 인권침해는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

이미 권력화한 언론은 피해를 입은 시민 개개인이 상대하기엔 너무 거대한 집단이 된지 오래다. 언론인권센터는 이러한 시민들을 돕는다. 기사라는 기치 아래 짓밟힌 시민의 권리를 되찾고 다윗의 투석이 돼 골리앗처럼 강력한 언론사와 싸움을 벌인다.

올 1월 취임한 남성우 언론인권센터 이사장은 방송 ‘다큐 PD’ 출신이다. 지난 2008년까지 KBS 편성본부장으로 일했다.

남 이사장은 우리나라 방송계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PD로 꼽힌다. 5공의 위세가 시퍼렇게 살아있던 1989년 광주항쟁을 직접 조명한 ‘광주는 말한다’를 연출했다. 광주 현지에서 14일간 20분짜리 테이프 70개 분량의 취재를 진행했다.

그런 그가 언론인권센터에 몸담은 일은 쉽게 이해할 수도, 또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른바 ‘선수끼리’라는 패거리 문화의 시각으로 보면 남 이사장은 옛 동지들에게 팔매질하는 집단의 수장이 된 셈이다.

5년 소송의 아픔 겪은 국가대표 ‘다큐 PD’
1998년 ‘한국논단’ 왜곡보도에 직접 피해
‘선수끼리’ 패거리문화 부정, 인권센터 투신

남 이사장도 “그 사건이 없었더라면 아마 이 자리에 없었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그 사건’이 뭘까. 바로 1998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국논단 사건’이다.

그는 극우성향의 한국논단 98년 3월호 ‘경찰을 악이라 보도하는 KBS’라는 기사에서 주사파로 지칭됐다.
한국논단은 남 이사장이 93년 부장으로 승진하면서 기획한 방송 최초의 한국현대사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 극장’을 거론하며 이같은 기사를 게재했다.

‘다큐멘터리 극장’에서 파헤친, 광복 후 친일경찰 척결에 나선 최병진 서울시경 수사국장 재조명 프로가 빌미였다. 당초 TBC로 입사한 뒤 80년 신군부 정권의 언론인 대량해직 사태로 4년의 실직생활을 견뎌야 했던 그에게 한국논단이 벌인 상식이하의 기사는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다.

남 이사장은 “KBS에 입사한 뒤 때에 맞춰 승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방송인으로서 ‘남상우 PD는 주사파임이 분명하다’는 한국논단의 기사를 두고 볼 수만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논단은 ‘서울 하늘이 온통 벌겋게 물들고 있다’, ‘KBS가 건국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라는 선정적인 문장으로 도배한 기사를 쓰면서 많은 KBS 관계자 가운데 유독 나의 이름만 실명을 거론했다”며 “그대로 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소송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소송은 쉽지 않았다. 1심 재판에서는 예상대로 무난히 승소했으나 항소가 기다렸고, 항소의 문턱을 넘자 상고가 이어졌다.

장장 5년 동안 이어진 송사였다. 결국 진행중인 재판을 포기하고자 했으나 다행히 무료변론을 맡아준 변호사와 함께 끝까지 싸워 상고심에서도 승소했다.

승소를 했어도 아직까지 당시의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옛 직장 동료들은 으레 “주사파 잘 있었냐”는 농을 건넨다. 당사자로서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5년 동안 감내해야 했던 소송의 괴로움이 다시 떠오른다.

그는 “개인이 언론사 관련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꼈다”며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언론사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살리면 언론인권센터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남 이사장은 따라서 ‘선수끼리’라는 패거리 문화를 앞세워 기자나 PD가 정치인, 기업 홍보담당 임원 등을 암묵적으로 ‘봐주는’ 식의 거래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언론인권센터를 통한 시민들의 언론피해 구제에 나선다.

그는 “올 한 해 동안 센터의 시민상담 실적을 꼼꼼히 분석해보니 횟수가 오히려 줄어들었다”며 “보다 많은 시민들이 센터를 찾아 개인이 해결하기 힘든 피해사례를 알리고 센터는 이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는 교육사업이나 행사를 줄이는 한이 있어도 시민에 대한 홍보에 전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남 이사장은 심지어 “지하철 광고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실무 활동가들을 채근한다. 자신이 직접 겪었던 언론으로부터의 피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언론사로부터 피해를 입었을 때 찾는 언론중재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는 결코 시민 편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방통위나 언론중재위는 모두 국가 기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며 “기본적으로 정부와 언론사 시각으로 사안을 보기 때문에 눈에 띄지도 않는, 형식적인 반론보도나 정정기사를 게재하는 선에서 덮게 된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해당 언론사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받는 일은 언론인권센터와 같은 중립적인 시민단체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남 이사장은 최근 시민단체 운동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노무현 정부시절보다 크게 위축되고 있다”며 “이는 당시 시민단체들이 정부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시민단체는 항상 중립성을 가지고 행보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 이사장은 끝으로 최근 조정래 씨가 펴낸 소설 ‘허수아비의 춤’ 얘기를 꺼냈다.

“조정래는 소설에서 경제권력과 정치권력, 언론권력의 삼각동맹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으로 시민운동을 들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이 되새겨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