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왕궁수문장 교대의식 ‘막전막후’
덕수궁 왕궁수문장 교대의식 ‘막전막후’
  • 정형목 기자
  • 승인 2011.12.0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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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3차례 조선왕조 위엄 알리는 서울의 역사 이벤트

갑옷을 입은 장수의 구령에 맞춰 군졸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서울 중구 태평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진행하는 ‘왕궁수문장교대의식’이다.
조선 품계에 따르면 지휘하는 장수는 종6품 수문장이다. 요즘으로 치면 대위쯤 되는 계급이다. 조선시대 궁궐의 문을 경비하는 수문장청이 있었고, 수문장은 참하, 수문군 등을 지휘했다.

▲ 수문장 교대식을 위한 의상 준비 모습.
■ 종6품 수문장의 궁성 경비
수문군은 궁궐 경비와 함께 통행인을 살피고 필요에 따라 단속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왕궁수문장교대의식’은 조선시대 궁성·도성문 개폐의식, 궁성시위의식, 행순 의식 등의 절차로 나뉜다.
서울시는 지난 1996년부터 자료 고증을 통해 매주 월요일을 제외한 6일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궁성시위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는 문화재청 주관으로 매주 화요일을 제외한 날에 같은 의식을 치른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대한문과 광화문 의식의 모양새는 수문군의 복식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양쪽 의식을 번갈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덕수궁의 ‘왕궁수문장교대의식’은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3시 30분 등 3회에 걸쳐 대한문 앞에서 2개 팀(수문군과 수위군)이 교대로 실시한다. 또 대한문에서 출발해 청계천, 보신각, 세종로를 거쳐 광화문광장을 순회하는 순라의식도 하루 2회 별도로 진행한다.

■역사고증 따른 5단계 교대의식

‘왕궁수문장교대의식’은 5단계의 절차를 거친다.
의식 거행에 대한 왕의 승낙을 받은 후 수문장에게 알려주는 ‘군호하부의식’ 이 시작이다. 이어 수문군들이 서로 상대방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군호를 서로 묻고 답하는 ‘군호응대’, 궁성문 열쇠가 들어있는 약시함을 인계하는 ‘초엄’, 부신을 맞춰보고 순장패를 인계하는 ‘중엄’이 진행된다.

▲ 수문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
부신은 조선시대 병조 등에서 발행한 여러 가지 신표(信標)로써 나무 조각이나 두꺼운 종이 조각에 글자를 쓰고 도장을 찍은 뒤, 2개로 쪼개 한 조각은 상대에게 주고 나머지 조각을 보관했다가 나중에 서로 맞춰 증거로 삼는 것이다. ‘중엄’을 마친 뒤에는 다시 수문장들이 서로 교대하는 ‘삼엄’, 의식이 끝났음을 알리는 ‘예필’ 등의 순서가 이어진다. 이들 의식은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총 4개 국어로 설명된다. 의식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여 분이다.

의식을 마친 수문군들은 관람객들과 사진촬영시간을 잠시 가진 뒤 5단계의 절차를 1회 더 재연하고 대한문 뒤로 퇴장한다. 교대의식이 열릴 때면 체험학습을 나온 유치원 어린이, 시민 등이 발길을 멈추고 사진기를 꺼내들기 일쑤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은 기념촬영 시간에 어김없이 수문장과 포즈를 취하느라 여념 없다.

■ ‘9 to 5’ 일상 보내는 수문군
덕수궁 대한문 ‘왕궁수문장교대의식’을 진행하는 관헌과 수문장, 수문군 등은 누구일까.
많은 시민들은 이들 수문군이 공익요원이라고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이들은 서울시로부터 의식진행 용역을 맡은 이벤트업체 직원들이다.

매일 아침 9시 출근해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후생동 앞에 설치된 가건물의 대기소에서 옷을 갈아입고 분장까지 마친다.
다른 직장인들과 다름없는 평상복을 입고 출근한 뒤 불과 1시간여 만에 조선시대 문관과 무관으로 변신한다.

오후 3시 30분 의식까지 마친 다음 분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으면 퇴근이다.
아침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이라는 일정을 보내는 평범한 회사원인 셈이다.
시민에서 수문군으로 변신하는 시간이 가장 바쁘다. 대기소에서 옷을 갈아입고 분장할 때면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 상대방의 옷 매무새를 만져주고 분장사는 매일 꼼꼼하게 수염분장 등을 진행한다.

서로 마지막 점검을 마친 뒤 대한문 앞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그들은 조선의 궁궐을 지키는 수문군이 된다.

*사진=이원배 기자 C21wave@seoultimes.net
  글=정형목 기자 dojhmbest@seoul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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