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소비 1번지 강남에 관한 GIS 보고서
대한민국 소비 1번지 강남에 관한 GIS 보고서
  • 송규봉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1.12.12 0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대별·계층별 소비와 욕망, 그리고 극단적 물신(物神)

▲강남의 지역별 소비패턴과 총 지출금을 나타내는 GIS Map.
대한민국에서 ‘강남(江南)’이란 단어는 미묘하고 복잡하다.  ‘강남’은 더 이상 ‘강 아래’ 지역을 뜻하지 않는다. 강남은 부의 상징이자 소비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강남이라는 어감은 사전적 의미와 무관하게 누구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요, 누구에게는 좌절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곳은 마치 뉴욕의 맨하탄, 도쿄의 신주쿠, 런던의 이스트엔드처럼 이 나라의 상업, 소비,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한민국 소비 1번지  강남

강남역은 서울시에 소재하는 300여 지하철역 중에서 승하차 이용객 1위이다. 지난 달에 개통한 신분당선을 빼고는 다른 노선과 연결되는 환승역도 아니다. 최근에 삼성그룹의 본사가 이전했지만 전통적으로 대기업 본사가 밀집한 지역도 아니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가장 많은 유동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하여, 강남역을 중심으로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의 소비패턴을 이해하는 것은 당대를 살아가는 서울시민들에게 여러모로 상징적인 의미를 보여줄 것이다.

최근 시장분석을 위해 OO신용카드 회사로부터 흥미로운 데이터를 전달받았다. 연구용이다. 2011년 10월 한 달치, 143만 건의 카드결제 데이터이다. 이 데이터에는 사용자의 이름, 전화번호, 주민번호 등 식별정보는 원천적으로 제외되었다. 동시에 카드가 결제된 업소의 상호와 위치도 알 수 없다. 강남지역을 1123개 도시블록으로 쪼개어 각 블록마다 데이터를 따로 집계했다.

사람과 업소의 직접적인 흔적을 모두 녹여버린 것이다. 다만, 연구 성과를 확보하기 위해  성별, 연령별, 업종별, 날짜별, 시간대별 결제금액만 제공받았다. 법무팀의 검증과 법리해석을 거쳤다. 다시 밝히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얼마나 카드결제를 했는지 근본적으로 알 수 없다.

먹고 사고 노는 것에 관한 지도

1283억 원은 어디에 쓰인 걸까? 강남에서 한 달 동안 사용된 143만건의 카드결제 데이터는 대한민국 소비 1번지의 실상을 보여준다. 음식(32.5%) >소매(23.3%) >의료(23.2%) >생활서비스(10.8%) >여가오락(4.9%) >교육(3.7%) 순이다. 카드사용자가 대부분 20세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강남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성인들은 먹고 마시는 것에 가장 많은 지출을 하고 있다. 뭔가 물건을 사고, 병원에 가는 것이 그 다음 순위이다.

소매(小賣, retail)란 가구, 신발, 액세서리, 가전, 주방용품, 화장품, 컴퓨터, 복사지, 의류, 담배, 김치, 음료수, 도서, 악기 등 상품구매의 모든 것을 말한다. 생활서비스는 상품구매를 제외한 생활상의 서비스업을 통칭한다. 목욕탕, 옷 수선, 컴퓨터수리, 광고물제작, 사진관, 세탁소, 미용실, 주유소, 카센터, 인테리어 공사 등을 포괄한다. 여가오락은 PC방, 당구장, 유흥주점, 노래방, 나이트클럽, 실내야구연습장, 요가, 단전호흡까지 포함한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있다. 여성은 먹고 마시는 업종보다는 병의원과 물품구매에 더 많은 돈을 쓴다. 생활서비스와 교육의 지출비중은 남성보다 높다. 남성은 먹고 마시는 일에 34.2%, 여가오락에 여성보다 2배 이상인 5.6%를 사용하는 것이 다르다.

여성이 집안 내부를 챙기고, 남성이 외부활동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이다. 강남에서 돈을 쓰는 사람들 중 남성은 20대부터 60대까지 꾸준히 의료비가 늘어난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20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다가 50대에 다시 상승하는 패턴이다.

20대 여성의 의료비 지출은 강남을 대표하는 성형외과와 피부과의 매출과 맥이 닿아 있다. 소매업 지도를 보면 강남역은 오히려 신사동, 서초동, 청담동에 밀린다.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한 한 강남역은 다른 지역을 압도한다.

멀리 3킬로미터 북동쪽으로 청담동은 별도의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병의원 관련 의료비는 ‘서울성모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이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패션의류 분야에서는 청담동과 압구정동이 강남지역을 석권하고 있는 형국이다.

불혹(不惑)의 지도, 이순(耳順)의 지도

강남지역의 소비를 주도하는 연령은 30대(39%), 40대(23%), 20대(13%), 50대(10%) 순이다. 흥미로운 것은 60대의 비율이 3%인 것에 비해 70%의 비율이 20대와 비슷하고 50대보다 높은 12%를 차지한 것이다. 추측하건대, 강남지역에 거주하는 구매력이 높은 고령의 웰빙 실버를 상징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연령대별로 강남지역 내에 상권별로 선호도는 크게 갈린다. 20대와 70대를 비교하면 가장 극명하다. 20대는 확실하게 ‘강남역’ 역세권을 선호한다. 친구나 연인을 만나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 물건을 사는 대부분의 소비활동이 특정 권역에 원스톱(ont-stop)으로 진행된다. 신사동과 압구정동에 중간 밀도가 형성되나 강남역에 비할 바 못 된다.

70대는 20대의 풍선효과와 일치한다. 강남역을 풍선의 중심이라고 가정해보자. 강남역을 꾹 누르면 주변부가 부풀어 오르는데, 강남역 북쪽 교보타워 사거리(신논현역), 동쪽 역삼역, 남쪽 뱅뱅사거리 지역이 솟아난다. 70대도 선호지역이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압구정동과 청담동이 만나는 지역이 두드러진다.

30대는 20대의 집중화 속성과 40대의 광역화의 속성의 중간에 있다. 40대 소비지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반포4동’의 등장이다. 바로 ‘서울성모병원’이 있는 곳이다. 20~30대에서는 전혀 부각되지 않는 곳이 40대에서 갑자기 최고 밀도를 형성한다.

60대의 소비지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반포4동’의 ‘서울성모병원’ 외에 ‘도곡1동’과 ‘한티역’ 사이에 또 하나의 붉은 밀집도가 형성된 곳이 나타난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의 위치이다. 병원출입에서 가장 높은 소비지출이 일어나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40대와 60대 소비지도에서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40대 지도는 가장 왕성한 활동공간을 대변한다. 전 연령층 중에서 소비의 지리적 범위가 가장 넓다. 우리 사회의 허리이자 조직의 중견이요 수많은 인적 네트워크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60대 지도는 지리적 활동반경이 좁아 든다. 20대의 집중적인 소비패턴이 다분히 선택적인 현상이라면 60대의 소비행동 범위는 생리적 경제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강남 24시와 인생 70년의 교차

강남의 새벽지도를 보자. 새로운 하루를 알리는 12시부터 아침이 오기 전 새벽 4시까지 아직 귀가하지 않은 사람들과 이제 막 일을 마친 ‘밤을 잊은 그대’들이 역삼동, 청담동, 압구정동, 신사동에 모여 있다. 강남의 아침지도를 보자. 출근하고 직장에서 일하느라 강남의 소비지도는 한산하다. 새벽지도와 비교해도 활동이 뜸하다. 다만, ‘서울성모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은 분주하다. 진료가 시작되고 환자와 피검자들이 모여 든다.

퇴근하고 오후 6시부터 8시, 밥집과 술집과 찻집에 사람들이 만난다. 강남역은 다시 해가 떨어진 어둠 속에서 휘황한 네온을 자랑하고 사람들로 거리는 넘쳐난다. 1차가 끝나고 아쉬운 사람들은 이제 강남역 북쪽 교보타워 사거리나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청담동으로 2차를 간다. 3차를 가면 밤 12시를 넘기고 새로운 하루와 다시 만난다.

20대와 70대는 동년배들의 선호 장소가 뚜렷하다. 20대와 70대의 소비 지도를 다시 들여다보면,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50년의 세대차가 읽힌다.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은 어느 글에서 20대를 욕망의 용광로라고 표현했다. 30대는 킬리만자로를 자신의 지도에서 지워 버리게 되는 나이라 했다. 40대는 어리석음과 교활함의 우화, 50대는 새로운 인생 유치원생, 60대는 차 맛을 즐기는 나이, 70대는 자신의 체온이 34.5도라고 느끼게 될 것이라 했다.

강남의 소비지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읽힐 것이다. 강남은 오늘의 서울이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인 성장과 쇠락, 극단적인 아름다움과 추함, 극단적인 물신과 정신성, 극단적인 세대차와 소비차를 보여준다. 극단과 극단이 만나면 또 다른 불꽃이 인다. 누군가는 오히려 강남의 거리에서 삶의 흥망성쇠와 욕망의 뒷자락을 보고, 누구는 자기 내면의 바람소리를 새로 듣게 될지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