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택하는 방법
행복을 택하는 방법
  • 백수민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 승인 2011.12.1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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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연합 백수민 활동가

통장에 찍힌 금액은 70만원이었다.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고 온전히 사회인으로 변신한 후, 처음 받아본 월급이었다. 민중운동을 하는, 어쩌면 나보다 더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선배들이 쌈짓돈 모아서 주는 월급. 당연히 4대 보험 같은 것은 요원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그 돈을 받아든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매달 나가는 월세, 각종 공과금, 교통비, 식비 그리고 지역건강보험료를 포함한 의료비까지 더해지면 저축은커녕 마이너스 통장을 간신히 막을 수 있었고 그래서 가끔 우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Carpe Diem’을 외치며 지금만 바라보자 생각했다.

한 해 두 해 세월은 잘도 흐르고, 결혼한 지인들이 출산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됐다. 기본적인 아이의 생계부양을 넘어 혹시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꽤 큰돈이 드는 것 같았다.

사실 잘 모르겠다. 비혼(非婚)을 지향하게 된 것이 결혼제도가 가진 가부장문화에 대한 거부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와 더불어 무의식 중 강요된 경제적 선택인지. 게다가 주변에 부모가 아프거나 소천 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내 부모가 아프기라도 한다면, 내 몸 하나 겨우 건사하는 주제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아이와 부모의 문제만이 아니다. 현재 나는 적금도 보험도 들지 않았다. 아니 들 수 없었다.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다보니 나는 요즘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현행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유지된다는 기본 가정 하에,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병과 조우했을 때, 주변을 괴롭히거나, 빚을 내거나 하는 것보다 차라리 고통과 더불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금부터 하는 것이다.

사실, 주거와 의료문제만 해결돼도 이러한 고민에서 조금 더, 아니 실은 훨씬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안정적인 주거와 아플 때, 적절한 치료가 보장된다면 경제적 이유로 활동가를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비단 이는 활동가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빈곤층에게도 안전하고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가장 주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일을 돈벌이 때문에 포기하는 그런, 현재는 당연하지만 당연해선 안 되는 일은 분명 많이 줄어들 것이다.

부모가 아플 때, 아이가 사경을 헤맬 때, 한 겨울임에도 월세가 올라 거리로 나앉아야 할 때, 그런 ‘때’를 가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온다면, 나는 월급의 반 아니 그 이상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세금을 낼 것이다.

하지만 한·미 FTA가 실제로 발효되고 각종 민영화 바람이 불면 내가 꿈꾸던 복지사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의료민영화가 된다면. 그렇다면 미국처럼, 찢어진 곳 꿰매는 데에 300만 원, 출산에 1000만 원, 암에는 몇 억이 든다고 하니 존엄한 죽음이 아닌 개죽음을 오히려 대비해야할 것 같다.

한·미 FTA는 민영화를 위한 첫 단계라고 말한다. 소수가 더 많은 부를 차지하기 위해 부리는 각종 술수들. 그들에게 <페스트>의 한 구절을 전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리유는 행복을 택하는 것이 부끄러울 게 무어냐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 알베르 까뮈, <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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