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사이가 좋다?
느슨한 사이가 좋다?
  • 이승희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1.12.24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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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성격에 깊고 끈끈한 관계를 좋아하는 지라 늘 다니던 모임만 챙겨왔다. 젊은 직원들은 나와 달리 딸린 식구가 없어서인지 아님 넘치는 열정 때문인지 각종 동창회는 물론 온라인 동호회, 피트니스센터 모임까지 다양한 관계를 꾸리며 산다.

얼마 전 내년 사업을 계획하기 위해 우리 회사가 했던 프로젝트의 수주 경로를 분석해봤다. 공개 입찰이나 제한 경쟁이 상당부분이었고, 나머지는 우연히 인사를 나눴거나 뜨문뜨문 안부 인사나 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소개해 준 것이었다.

내년 경기도 신통찮다 하니 새 사업기회를 얻을 요량으로 여기저기서 초청하는 송년회에 마다 않고 달려간다. 초면이거나 얼굴만 겨우 아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일을 열심히 설명하고 고객 소개를 부탁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트위터, 블로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중요한 현상으로 부각하면서, 미국의 사회학자 마크 크라노베터(Mark S. Granovetter)가 주장한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갓 이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새 직장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조사해보니, 27.8%는 약한 연결을 통해, 55.6%는 중간세기의 연결을 통해, 16.7%는 강한 연결의 사람들을 통해서였다. 연구자는 이를 통해 가까운 친구들보다 먼 지인들이 새로운 정보, 다양한 아이디어, 색다른 기회를 제공해 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만남이 잦고 유대가 끈끈한 ‘강한 연결’의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커뮤니티, 정보채널 등 동질적인 관계들을 가지고 있다. 반면, ‘약한 연결’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이질적인 커뮤니티, 다른 영역의 정보채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다수와의 느슨한 관계가 소수와의 끈끈한 관계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가까운 사람들과의 지지고 볶는 갈등이 피곤하고 소모적으로 느껴져 다양한 사람들과 적당히 느슨한 관계만 유지하며 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지지는 끈끈한 관계에 있는 소수의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확산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나에 대한 평판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곳도 이들이었다. 물론 내가 어려울 때 선뜻 나서 도왔던 이들도 ‘가까운 친구’들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쯤 되니 ‘다양한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 만들기가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러모로 기운과 열정이 딸리는 나로서는 순서를 정할 수밖에 없다.

한 이동통신 광고처럼 ‘스마트 T’부터 우선할 생각이다. 가까운 친구들과는 더 깊고 진하게,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근황이나 안부도 가끔씩 두루두루 챙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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