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 충격 딛고, 소방관 집념 4년의 결실
숭례문 화재 충격 딛고, 소방관 집념 4년의 결실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2.01.07 0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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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리트 뚫는 소형소방차 개발한 이종문 소방경
▲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의 눈물을 흘리며, 시험에 시험을 거듭해 적은 예산으로 골목형 소방차를 개발한 이종문 소방경. 소방관의 사명에 대한 집념과 끈기가 그를 '골목형 소방차 개발'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했다. 

지난 2008년 국보 제1호 숭례문에 불이 붙었다. 600년 동안 눈비를 맞아온 기와 밑으로 끊임없이 흰 연기가 끊임 없이 피어오르는 TV 화면을 지켜보던 서울 시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숭례문이 전소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당시 숭례문 화재를 진압했던 소방공무원은 시민보다 더 큰 충격에 휘청거렸다. 그리고 만 3년이 흘렀다.

당시 누구보다 심한 속앓이를 했던 소방공무원은 2일 최초의 골목형 소방차 개발을 완료, 서울시내 2곳의 일선소방서에 배치했다. 그는 서울시 소방방재본부 안전지원과 장비기획 담당 이종문 소방경이다.

그가 개발한 골목형 소방차는 승합차를 개조, 일반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빌딩 틈새 등에 쉽게 접근하게 됐다고 언론에 소개됐다. 하지만 이 소방경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그는 “골목형 소방차에 단단한 벽을 순간적으로 뚫을 수 있는 장비를 탑재하고 이산화탄소를 뚫은 구멍을 통해 분사, 화재를 초기 진압하기 위해 개발한 장비”라고 말했다.

단순히 좁은 골목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 것이 아니라 벽의 관통과 후속 화재 진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골목형 소방차는 길이 5.1m, 너비 1.9m, 무게 3톤의 승합차량으로 각각 8.2m, 2.4m, 13.4톤인 기존 소방펌프차보다 훨씬 작다.

여기다 물과 산화알루미늄으로 만든 연마제를 섞어 특수제작한 노즐을 통해 250㎏의 압력으로 분사하는 장비를 탑재했다. 이 장비는 샌드위치 판넬을 단 5초만에 관통하고 강화유리는 8초, 기와 10초, 아파트의 이중방화문은 25초, 콘크리트 30초, 10㎜의 철판까지 40초면 뚫는다. 이어 뚫은 구멍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방출, 건물 내부의 화재를 순식간에 진압할 수 있다. 골목형 소방차에는 1시간 동안 분사할 수 있는 80㎏의 개스를 탑재, 웬만한 화재는 소방관 투입 없이 진화할 수 있다.

이 소방경은 숭례문 화재가 이번 장비 개발의 직접적인 동기라고 밝혔다. 그는 “숭례문 화재를 진압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심각한 우울증까지 앓게 됐고 세계 모든 나라의 소방장비를 찾아보게 됐다”며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스웨덴 코브라사에서 개발한 고압분사 관통장비를 찾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 소방경은 “자료수집을 계속하던 2010년 11월 조달청에서 국산 관련장비 개발을 추진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게 됐고 이듬해 1월 제작사 관계자와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관통력을 높이고 충분한 개스 분출량을 얻기 위한 실험을 거듭했다. 해외에서도 사례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에 오로지 직접 시험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2011년 5월 소방방재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공적인 시연을 마쳤다. 이번에는 예산이 문제였다. 이미 1년 예산을 모두 소모한 상태에서 외부발주사업 낙찰가의 차액을 모아 가까스로 2대의 골목형 소방차 생산에 나설 수 있었다.

이 소방경은 “예산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1억 원 한도에서 사재를 털어 개발하려 했다”며 “이번에 선보인 장비는 서울의 화재 진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같은 집념을 보이는 배경은 2008년 겪었던 숭례문 화재였다. 벽 관통력에 중점을 둔 이유도 우리나라 고건축물 내부 화재 진압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이기 때문이다.

이 소방경은 “숭례문과 같은 고건축물 지붕은 5겹의 구조로 돼 있고 공기와 차단된 내부에서 불이 타는 ‘훈소’ 상태일 경우 섣불리 기와를 벗기면 순식간에 불길이 솟는 백드래프트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 소방경이 개발한 소방차는 분사노즐만 고가차에 연결, 300m 높이까지 무인으로 도달할 수 있다. 이 소방경은 “숭례문 화재 이후 아빠에 대한 자긍심이 가득했던 아이들의 실망도 매우 컸다”며 “그 때문인지 아들 아이에게 소방관 시험을 보라고 권유했지만 일반 회사에 다닌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서울시 골목형 소방차는 한 소방관의 이같은 ‘부채의식’과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는 ‘염치’가 만들어낸 명품 소방장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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