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읽는 서울 박성우의 Poem Essay
詩로 읽는 서울 박성우의 Poem Essay
  • 박성우 시인
  • 승인 2012.01.1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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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림

충무로 사가 파출소 옆

지금 우리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 노래방은

내가 유단뽀를 끌어안고 누워 카와까미 하지메의

『가난 이야기』를 읽던 6조 다다미방이다

50년대 중엽, 통금 사이렌 소리에 맞추어

을지로를 지나는 마지막 전차가 경적을 울리고

단팥죽 사려 소리가 사라지던 골목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적막한 거리에는

한보사태에 대통령 아들의 비리와

주체사상 망명의 속보들이 어지럽다

가까이 앉은뱅이 악사의 ‘며칠 후’를 외는 소리

소주방에서 몰려나오며 거는 핸드폰 소리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중략)


가등이 어두운 비탈길을

힘겹게 올라가는 연탄수레

달려내려오는 가스통을 실은 소년의 오토바이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나아졌는가

새장 속의 앵무새까지도 나를 비웃고

불과 물과 가시 속에 새겨진 발자국들을 조롱하는

1997년 봄, 서울

충무로에서 관훈동에서 홍은동에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 세월이 참 많이도 가고

······ 세월이 참 많이도 바뀌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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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출처 : 신경림(1935~),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 신경림 시인은 1935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이어서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빼어난 시를 현재에도 왕성하게 보여주고 있는 한국문학의 거대한 산이자, 산증인이지요.

‘세월이 참 많이도 가고’를 읽으면서 저 또한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나아졌는가”를 곰곰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무튼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습니다.

시가 좀 길어서 부득이하게 2연과 3연에 나오는 50~60년대의 관훈동과 홍은동 얘기는 생략할 수밖에 없지만, 귓가에는 “50년대 중엽, 통금 사이렌 소리에 맞추어 / 을지로를 지나는 마지막 전차”의 경적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눈앞에는 “단팥죽 사려 소리가 사라지던 골목”이 보일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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