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미 시인의 'post-아현동'
안현미 시인의 'post-아현동'
  • 박성우 시인
  • 승인 2012.02.10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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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현동 산동네에 갔다

오래전 월세 들어 살던 방,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하던 방, 연탄불을 넣던 방, 이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울먹이던 방, 외롭던 방, 고맙던 방, 아주아주 춥던 방,

그 시절 내 마음에 전세 들어 살던 첫 애인을 생각하는 밤, 나의 아름다운 남동생의 흐려진 얼굴빛을 걱정하는 밤, 고단한 토끼에게 아무 약효도 없는 안약을 건네던 밤, 가난한 추억과 합체하던 밤,

아현동 산동네를 내려와 찾아간 ‘BAR다’ 어둡고 낡은 나무계단 끝에서 화장실이 어딘지 모르고 서 있는 머리 긴 외국남자에게 “너는 왜 여기 서 있니? Way?"라고 물으며 괜스레 친절하고 싶던 밤, 함께 여기를 뜨자고 말하면 주저없이 따라가고 싶던 밤, 국적도 모국어도 잃어버리고 싶던 밤, 나 스스로에게 “너는 왜 여기 서 있니? 왜?”라고 자꾸 되묻던 밤,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개를 기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열정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 서 있니? 왜?

작품출처 : 안현미(1972~), <이별의 재구성>

■ 가끔, 마포 근처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고는 하는데, 아직 “아현동 산동네”에는 가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어쩐지 아현동 산동네를 여러 번 다녀오기라도 한 듯 아현동 산동네가 자꾸 눈에 밟힙니다.
“나는 왜 여기 서있니? 왜?”, 시인은 굳이 왜 아현동 산동네를 찾아갔을까요. 단순히 추억을 되새기러 갔을까요? 야경을 내려다보며 울먹거리던 방이 보고 싶어서 갔을까요?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열정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는 말에 힌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요. 이 추운 겨울, 열정만큼은 잃어버리면 아니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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