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서 현대로의 경계 넘어선 ‘고암 이응노’
전통에서 현대로의 경계 넘어선 ‘고암 이응노’
  • 정민희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2.02.11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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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희의 마음으로 미술읽기 <18>

수묵화와 서양화의 경계, 평면과 입체의 경계, 순수미술가와 디자이너의 경계.
20세기 미술에서는 그 구분선을 넘나드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했다. 주제 면에서나 재료 면에서도 연속성을 갖는 게 의무는 아니었겠지만 그 경계를 무너뜨리는 실험성은 이단아가 아니었을까?

일만 점이 넘은 작품을 남기며 화가의 역할을 가장 충실히 하면서 꼴라주, 조각, 판화, 도자 등을 넘나들며 끊임없는 도전으로 한국미술사에 새로운 지평을 남긴 작가 고암 이응노(1904~1989)가 그런 이단아였다.

▲ 군상 People, 한지에 수묵, 1985.

전통 묵화와 서예에서 출발한 화풍은 사실주의적 탐구에서 반추상화작업으로 이어졌다. 1958년 50대의 나이로 파리로 이주한 이후 종이를 뜯어서 붙이는 꼴라주와 구성작업을 해 나갔다. 10년을 주기로 작품성향은 변화했다.

1960년대 당시 유럽의 추상미술 유행에 영향을 받아 전통미학의 근간아래 서예 한자 글자를 바탕으로 상형문자 같은 기호들과 결합한 독특한 ‘문자추상’을 창조하였다.

‘문자추상’에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문화가 공존하며 인간과 자연의 세계, 모든 우주와 생명의 움직임을 담아냈다.

또한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인간군상’ 시리즈에 몰두하게 되는데, 이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손잡고 공존하며 사는 군중들이 어울려 있는 모습, 바로 민중의 삶 ‘평화’를 나타내려는 작가의 조형질서이며 언어이다.

한국전쟁과 냉전시대 속에서 동백림사건(1967년) 등의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리운 고국 땅을 오지 못했다.
▲ 구성 Composition, 타피스트리, 1975.

이응노의 삶에서 권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민중들의 모습은 단순한 동양적 관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생동하고 움직이는 역사속의 인간상이다.

현대미술의 근본 원동력인 전통미학의 맥을 세련된 기호로서의 ‘문자추상’과 일획운필의 노련함으로 이루어 낸 ‘인간군상’시리즈. 이는 한국적 민족관을 고취시키고 전통과 현대의 화법을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2000년 종로구 평창동에 개관한 이응노미술관은 2007년 대전광역시로 이전하였고, 이후 다양한 주제로 이응노를 재조명하고 있으며 2010년 연세대 박물관에서 순회전을 하기도 하였다. 미술경매 등 미술시장의 낙찰가를 보자면 한국미술사에서 재평가가 필요한 중요한 작가이다.

■고암 이응노‘희망을 춤추다’展.
롯데갤러리 청량리점. 12월 21일까지. (02) 3707-2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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