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간의 갈등에서 탄생한 꽃, 꽃며느리밥풀
고부간의 갈등에서 탄생한 꽃, 꽃며느리밥풀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09.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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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37]

▲ 꽃며느리밥풀. ⓒ송홍선

며느리하면 먼저 ‘귀머거리 삼 년이요, 벙어리 삼 년’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전통적인 대가족제도에서 며느리는 지켜야할 일들이 너무 많고 어려워 괴로움의 연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부녀자들의 수신 교과서라고 할 ‘여사서’, ‘열녀전’, ‘소학’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시집살이는 다른 집안에 들어가 며느리 노릇을 해야 하는데서 오는 갈등도 컸다. 이는 ‘가가례(家家禮)가 다 다르니 배운 바도 적거니와 본가에서 보던 일도 시댁에는 혹시 없어, 시댁에서 보던 일도 본가에 혹시 없어, 범백사(凡百事)를 배우려니 답답한 때 실로 많다’라는 가사에 잘 나타나 있다.

민요에서는 ‘성님 성님 사촌형님 시집살이 어떻든가, 고초 당초 맵다한들 시집살이 당할소냐, 열두폭 다홍치마 눈물 받아 다 썩었네’를 들 수 있다.  

고부간의 갈등은 우리 속담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사위 사랑은 장모’가 그것이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 같단다’, ‘며느리가 미우면 손자까지 밉다’, ‘며느리 자라 시어미 되니 시어미 티 더한다’ 등의 속담도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박정(薄情)과 학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며느리의 고충은 밥알을 훔쳐 먹다가 시어머니에게 맞아 죽은 후에 꽃이 되었다는 ‘꽃며느리밥풀’ 설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덧 아들은 성년으로 성장하여 장가를 가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며느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에 은근히 질투심을 품고 며느리를 미워하였다.

▲ 꽃며느리밥풀. ⓒ송홍선
신방을 꾸민 지 얼마 안 있어 아들은 산 너머 마을로 머슴살이를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아들이 머슴살이를 떠나고 난 후 어머니는 며느리를 더욱 학대하기 시작하였다. 며느리가 빨래터에 갔다가 오면 그동안 누굴 만나 무엇을 하다 왔느냐며 다그치고, 깨끗하게 빨아온 빨래가 더럽다며 마당에 내동댕이치는가 하면 발로 짓밟기까지 하면서 구박하였다. 게다가 밥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늦었다고 꾸중하고, 빠르면 왜 그렇게 밥을 빨리 주느냐며 구박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며느리는 저녁밥이 다 되어 갈 무렵에 뜸이 잘 들었는지 알아보기 하여 밥알 몇 개를 입에 물고 씹어 보았다. 시어머니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어른이 먹기도 전에 훔쳐 먹었다고 며느리를 나무라면서 모진 매를 때렸다. 며느리는 매를 맞으면서 밥알을 혀끝에 물고 쓰러졌다. 며느리는 며칠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머슴살이를 떠났던 남편이 돌아와 묻어 준 아내의 무덤가에서는 이름 모를 풀이 자라났다. 이 풀의 꽃은 며느리의 입술처럼 붉은데다 하얀 밥알을 입에 물고 있는 듯이 피었다. 후에 사람들은 이 풀을 착한 며느리의 넋이 변한 꽃이라 하여 ‘꽃며느리밥풀’이라고 불렀다.

꽃며느리밥풀은 한반도의 거의 전 지역에서 자라지만 주로 남부 지방과 중부 일부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풀은 꽃이 작고 산기슭의 숲가장자리 또는 길가나 초원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사람의 발길에 자주 밟힌다.

이 풀은 관상용이나 밀원용 등으로 쓰이는데, 특히 꽃에는 꿀이 많아서 양봉 농가에 도움을 준다. 또한 농가에서는 이 풀을 채취하여 퇴비 등으로 썼다. 그러나 농촌의 사람들은 이 풀을 잡초로 여겨 좋아하지 않았다.

이 풀은 다른 식물의 영양분을 흡수하며 사는 반기생식물이므로 의지력이 없어 약하다. 연약한 느낌이 많은 식물이다. 그리고 꽃며느리밥풀은 그 이름에서 볼 때에 며느리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아 며느리의 고달픈 시집살이를 표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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