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읽는 서울 박성우 의 Poem Essay
詩로 읽는 서울 박성우 의 Poem Essay
  • 시인 박성우
  • 승인 2012.02.19 0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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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호 3

- 눈이 오는 건 그녀가 내게 오기 때문이야

신촌 크리스탈백화점 앞에서 눈을 맞는다

눈이 오니까 그녀는 지금

눈길을 오리라

그녀 뒤의 발자국을 눈은 지우리라

자꾸 눈발은 등을 민다 그녀는

등을 밀리며 오리라 리어카 스피커에서

한 생애가 쏟아져나와

쉽게 살얼음이 되는 것 바라보며

사람들은 찬 이마와 머리칼을 데리고

어디로 가나 그녀는 지금

손아귀에 깊은 골짜기를 쥐고 오리라

눈길을 오며 그녀는 아이를 가지리라

재개봉 영화 간판을 올리며 눈발 속의 한 인부가

흑백 화면처럼 저녁을 가린다

강화버스 쪽으로 골목 하나 사라지고

그 자리에 적막한 불빛을 물고

강화버스가 두런두런 들어선다

골짜기 내게 가까워 어깨에 묻은 눈을 털고

말없이 손을 잡고 나는

그녀에게 入山한다

눈길을 다시 가며 그녀는 호두나무꽃 같은

아이를 가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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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출처 : 장석남(1965-),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 <돌아가는 삼각지>의 가수 배호를 모르지는 않겠지요? 1971년 만2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불운의 가수이자 300여 곡의 노래를 남긴 불멸의 가수. 저는 지금 배호 노래에 깊게 젖어들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1965년생인 장석남 시인이 이 시를 쓰던 스물 서넛 무렵엔 마포 용강동에 직장이 있었다고 해요. 때문에, 출근을 하기 위해서는 신촌역에서 내려 크리스탈백화점에서 마을버스를 탔다고 합니다.

헌데 마침, 마을버스 기사분이 가수 배호를 너무나 좋아해서 자주 배호 노래를 틀어주었다고 하네요. (당시 마을버스는 지금과는 달리 개인 승합차 한 대가 적당한 시간 간격을 두고 용강동과 신촌역 사이를 왕복했다고 합니다.)

“눈이 오는 건 그녀가 내게 오기 때문이야”라는 부제만으로도 저를 확 끌어당기던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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