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국
6국
  • 시인 박성우
  • 승인 2012.02.2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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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1호터널은 용산구 한남동에서 중구 예장동을 잇는 터널이지요. 지난해에는 터널 안에서 자동차가 폭발해서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었는데, 그 터널 옆에 중앙정보부 6국이 있었군요.

중앙정보부라는 말만 꺼내도 치를 떠는 사람들, 적지 않게 봤습니다. 여전히 진저리나는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여럿 봤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중앙정보부는 제3, 4공화국 때, 국가의 안전 보장에 관련되는 정보와 보안 그리고 범죄 수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무소불위의 기관이지요. 1961년에 설치되었다가 1981년에 국가안전기획부로 명칭이 바뀌기도 했었고요. “한번 들어갔다 하면 뼈도 못 추리고 나오는 곳” 정말이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남산 1호터널 옆에 박통 시절의 정보부 6국이 있었지. 한번 들어갔다 하면 뼈도 못 추리고 나오는 곳. 으스스한 철문을 열고 검은색 차가 미끄러져 들어가면 검정 고무신에 다 군복으로 갈아입고 백묵으로 ‘2573’이라고 씌어진 흑판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 했지. 꼭 간첩이 된 기분이었지. 그러나 그곳도 시간이 지나다보면 사람 사는 곳. 밤 11시쯤 되면 수사관들 중 막내가 장충동이나 충무로로 나가 족발이나 충무김밥을 사와 술판을 벌이곤 했지. 한잔 술이 거나해지면 지네들이나 나나 다 같은 인간. “어이, 자네 친구 송기원이는 왜 길을 갈 때 한번도 뒤돌아보는 적이 없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마 습관이겠지!” “그 자식 아직 정신 못 차렸더군. 주제에 ‘한겨레’라는 찌라시에다 자넬 석방하라고 썼어.”

철제 침대를 펼치고 군용담요를 덮고 누우면 도무지 내일을 알 수 없는 깜깜한 절벽. 수사관들이 하루종일 내가 쓴 진술조서를 뒤적거리느라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는데, 아침이 와 다시 혈압을 재는 뚱뚱한 의사가 다녀가고 식판에 담겨온 까슬한 밥을 먹고 나면 “그러니까 말이야, ‘꽃 파는 처녀’는 왜 읽었어? 그리고 여기엔 밑줄도 그었잖아? 이유를 대봐!”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 어제와 똑같은 지루한 심문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작품출처 : 이시영(1949~),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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