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진달래 피는 3월의 정릉 나들이
개나리·진달래 피는 3월의 정릉 나들이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2.03.11 2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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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에게 버들잎 띄워 물 권한 신덕왕후 능원

태조 이성계가 사냥을 나갔다가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만난 처자에게 물을 청했다. 처자는 샘물을 뜬 바가지에 버들잎 하나를 띄워 전한다. 급하게 마시면 탈이 날 수 있으니 천천히 나뭇잎을 피해 마시라는 뜻이었다. 그 처자는 나중에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가 된다.

신덕왕후의 능이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정릉이다. 왕후 능으로서는 얼핏 단촐해 보인다. 실제로 정릉은 영월의 장릉(6대 단종), 남양주시의 사릉(단종비 정순왕후)과 함께 3기만 남은 단기 왕릉이다.

방번과 방석, 경순공주 등 조선 개국기의 권력과 거리가 먼 3남매만 둔 왕후였기에 사후에도 대우를 받지 못했다. 정릉은 원래 태조가 도성 안에 두었으나 태종이 왕위에 오른 뒤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개국 공신인 정도전 등은 당초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려 했으나 태종 이방원이 ‘쿠테타’를 일으켜 왕이 되면서 정릉 또한 당시 양주 사한리(현 정릉동)로 밀어낸 것이다.

시민들은 정릉동은 알아도 정릉의 위치와 사연을 잘 알지 못한다. 3월 정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이가 많다. 지금도 정릉에는 병풍석이 없다. 능을 묘로 격하하고 자리를 옮기면서 석물 대부분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신덕왕후가 복권된 것은 1669년 현종 때였다. 지금의 정릉은 병풍석이 없는 봉분과 고석(받침돌) 2개, 무인석은 사라지고 문인석만 남아있다. 하지만 해마다 봄이 오면 능원 안에 개나리가 화사한 꽃망울을 터트리고 연분홍 진달래도 겨우내 스산했던 언덕에 고운 색을 입힌다.

이른 봄기운이 기지개 켜는 3월, 가족과 함께 정릉을 찾아 1392년 조선 개국 당시의 이야기를 나눠보자.

■ 주소: 성북구 아리랑로 19길 116
■ 가는 길: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역 6번출구에서 아리랑고개방향 100m지점 버스(1012번, 1014번, 1211번)승차, 정릉입구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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