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상징의 살아있는 화석, 은행나무
장수 상징의 살아있는 화석, 은행나무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10.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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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38]
▲ 은행나무. ⓒ송홍선

한반도에서 가장 큰 나무는 양평군의 용문사에 있다. 1,100년의 세월동안 살아가는 은행나무이다.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었다. 1990년대에 어느 외국인은 이 나무를 보고 ‘원더풀(wonderful)’을 연발하였다. ‘황금나무’라며 감탄하기도 하였다. 그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 거대한 나무의 위용을 보면 찬사를 보낼 만하다.

우리 농민들은 1970년 초부터 이 황금의 나뭇잎을 유럽으로 수출하였다. 수출이라기보다 그냥 헐값에 넘겼다. 농민들은 유럽인들이 은행잎을 대량 사가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잎이 무엇에 쓰이는 지, 무슨 목적으로 수입해 가는 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를 몰랐다. 헐값으로 팔린 은행잎이 ‘황금잎’으로 탈바꿈하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란다.

현재 은행잎을 재료로 하는 순환계 질환예방, 노화방지제, 악취제거제, 경피흡수촉진제, 해독제, 빈혈치료제 등의 국제 의약품 특허가 거의 100여 종류에 이르고 있다. 이는 은행나무의 쓰임이 많고, 은행잎 성분이 의약품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좋은 증거이다. 한반도에서도 외국인이 황금나무라고 가르쳐 주고 난 이후에야 은행잎을 첨단생명과학기술로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은행나무의 열매(씨)는 볶아서 그냥 먹거나 신선로 등의 여러 음식에 고명으로 이용한다. 과자의 재료로 이용하는가 하면 날 것으로 먹기도 한다. 옛날에는 처녀가 시집가는 날 새벽에 어머니가 볶은 열매를 딸에게 먹이는 풍습이 있었다. 또한 열매는 장수를 돕는 식품이거나 기침과 천식을 다스리고 성인병의 예방 및 치료에 도움을 준다. 한방과 민간에서는 폐와 위를 깨끗하게 하는데 쓰거나 진해, 거담에 약재로 쓴다. ‘본초강목’에는 ‘은행을 익혀서 먹으면 폐를 온하게 하고, 천식과 기침을 진정시킨다’라는 기록이 있다.

▲ 은행. ⓒ송홍선
열매의 성분은 탄수화물이 주가 되고, 단백질의 함량도 비교적 많다. 그런데 열매를 많이 먹으면 중독을 일으키는 일이 있다. 이것은 청산배당체에 의한 것이다. ‘산림경제’에는 과식하면 소화기를 해치고 중독성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른은 1회에 10~15개를 복용하는 것이 좋다. 잎에도 여러 가지 화합물이 들어 있는데, 특히 방충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부틸산(butyric acid)이 있어 잎을 책 속에 넣어두면 책이 쉽게 상하지 않는다.
크고 오랫동안 살아남은 은행나무는 예로부터 신성한 나무로 여겼다. 강원 영월군의 은행나무 속에는 영사(靈蛇)가 살고 있기 때문에 개미 등이 얼씬 못하고, 충남 금산군의 은행나무는 이 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신이 있다.

경북 선산군의 나무는 그 마을을 지키는 당산목으로 신성시하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 앞에서 동제(洞祭)를 지내고 있다.

용문사의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게 전한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 순사들이 이 은행나무를 자르려다가 즉사했으며, 옛날 어떤 사람이 톱을 대자 피가 쏟아지고 화창했던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고 한다. 고종황제가 승하하였을 때는 큰 가지 한 개가 부러졌고, 8·15, 4·19, 5·16, 6·25 때에도 이 나무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수명이 길기 때문에 장수를 상징한다. 또한 사람들은 신목(神木), 당산목으로 여겼다. 은행나무가 가장 넓게 분포하였던 시기는 1억5000만년 전이다. 공룡이 살기 전이고, 최초의 인류가 등장하기 전이다. 은행나무는 이때부터 진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금까지 그 모습 그대로 살아남았다고 하여 ‘살아있는 화석’이라 부른다. 꽃말은 죽음의 노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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