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다산, 다남(多男)을 상징하는 대추
풍요, 다산, 다남(多男)을 상징하는 대추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10.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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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39]
▲ 대추나무. ⓒ송홍선

산야를 많이 돌아다녀서인지 대추나무하면 싹이 늦게 나오는 사실이 먼저 떠오른다.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가 모두 싹이 나와 자라는 늦봄에 새싹이 트기 때문에 죽은 나무로 오해하기도 한다. 대추는 대추나무의 열매를 일컫고 있다.

대추 열매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대추나무와 달리 제사상의 과실이다. 또한 폐백 때의 풍습, 한약방의 약재, 편의점의 음료수 등도 종종 생각난다. 대추 열매는 익으면 약간 단단하고 검붉은 빛깔을 띤다.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빛깔을 태양과 그 기원에 연관시켰다. 그래서 대추는 삶의 기원으로 조상 또는 태양을 상징하고 있다.

대추는 조동율서라 하여 제사상의 동쪽에 올리고 서쪽에 밤을 차려 놓는 이유도 대추 열매가 태양의 상징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사상의 대추는 죽음을 암시하는 이미지와도 상관이 있는 듯하다.
민간에서는 꿈에 대추를 보면 빨리 죽을 운명으로 여겼다. 그것은 대추의 한자 ‘조(棗)’자가 ‘이를 조(早)’자와 발음이 같고 ‘올 래(來)’자와 자형이 비슷하므로 죽은 시체가 빨리 찾아올 것이라는 관념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발상 역시 제사 때 대추를 차려 놓는 것과 관계가 있다. 물론 대추가 낙태약으로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도 죽음을 의미하는 상징성에서 파생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가 하면 대추는 열매를 많이 달기 때문에 풍요, 다산, 다남(多男)을 상징한다. 옛날 가락국의 건국신화에 따르면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이 김수로(金首露)왕을 만날 때 많은 대추를 가지고 왔단다.

▲ 대추 말린열매. ⓒ송홍선
여기에서의 대추는 아들을 많이 낳으려는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경도잡지’에는 결혼식 때 신부가 옷상자, 경대와 함께 대추를 가지고 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도 아들을 많이 낳기 위한 소망 때문이다. 이 풍습은 지금도 전한다. 결혼식 폐백 때 신부는 시부모에게 대추를 드리는데, 이때 시부모는 붉은 실로 그릇에 둥글게 쌓은 대추를 실에서 빼내어 신부의 치마폭에 던지면서 다남을 기원한다.

게다가 대추는 오장을 보하고 여러 가지 약재를 서로 화합하게 하는 효능을 지닌 한약재이다. 한약명은 산조인(酸棗仁). 이것은 붉은 열매를 따서 말릴 경우 주름살이 많이 생긴 상태의 것이다. 주로 쇠약한 내장의 기능을 회복시켜 주고, 전신을 튼튼하게 하며, 신경을 안정시키고 노화를 방지하여 젊음을 유지시키는 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 의학서인 ‘향약집성방’에는 과실부문의 최상품 향약으로 대추가 소개돼 있다. 그래서인지 옛사람들은 대추의 재배를 권장했는가 하면 그 열매를 따서 한약재나 식품으로 곧잘 이용했다.

최근 들어서는 대추를 이용한 기능성 음료수도 출시됐다. 사실 옛날에도 대추는 일반적으로 상식했던 식품이었다. 옛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임원십육지’를 비롯해 13세기의 ‘농상집요’, 조선 정조 때의 ‘해동농서’, 1789년경의 ‘본사’ 등에는 대추가 과실류의 하나로 중요하게 기록돼 있다.

또한 조선시대 방신영의 ‘요리제법’과 이원규의 ‘조선요리(1940년)’뿐만 아니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등에는 대추초(대조초, 대조감자) 등의 요리내용이 나온다. 선비들은 불로장생을 돕는 여름의 마실 거리로 대추를 이용했다. 온조탕이라 해서 대추를 삶은 물에 생강과 꿀을 섞어 오지그릇에 담고 익힌 다음 사향을 뿌려 다시 끓여 차 마시듯 했다.

옛날 대추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는 대추나무 시집보내기가 있다.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는 커다란 줄기 사이에 박피가 되도록 돌을 끼워 넣는 것을 말하는데, 대추나무는 5월 5일 단옷날에만 시집을 보내 많은 열매를 맺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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