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을 상징하는 생각의 갈대
연약함을 상징하는 생각의 갈대
  • 송홍선 민속식물연구소장
  • 승인 2010.10.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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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의 ‘풀꽃나무 타령’ 40]
▲ 갈대 항암. ⓒ송홍선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이 인간을 비유하여 한 말이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다.

파스칼은 그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팡세’의 1절 첫머리에서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성서에서 유래하는 것 같다. 성서에서 갈대는 바다의 풀이나 소택지의 풀 등으로 나오며, 출애굽기 2장 3절 등에서는 나일강에 무성한 풀로 기록되었다. 예수가 요한을 칭찬할 때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마태복음 11장 7절)’라고 하여 갈대가 인용됐다.

또한 ‘상한 갈대(마태오의 복음서 12:18∼22, 사도행전 42:1∼4)’의 내용도 있다.

인간은 이 광대무변한 대자연 가운데 ‘한 개의 갈대'와 같이 가냘픈 존재에 지나지 않으나, 생각하는 데 따라서는 이 우주를 포옹할 수도 있는 위대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생각하는 갈대'는 위대함과 비참함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순된 양극을 공유하는 인간 존재와 그 밑바닥으로부터 싹트는 불안을 이 한 구절이 상징하고 있다.

갈대는 길게 자라 쓰러지기 쉬운 줄기 때문에 연약함, 망설임 등을 비롯해 여자의 약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표식을 나타내기도 했는데, ‘삼국사기’에는 보장왕 폐위 때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그 표지로 갈대의 잎을 모자에 꽂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갈대는 바람이 있는 곳에서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수다의 상징이기도 하다. 수다의 상징과 관련한 신화는 다음과 같다.

한반도에서는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의 귀’라는 설화로 잘 알려진 오비디우스(Ovidius)의 ‘변신 이야기’ 신화이다.

▲ 갈대 인천. ⓒ송홍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리지아(phrygia)의 왕 미다스(Midas)는 목신(牧神의 판(Pan)과 태양신 아폴론(Apollon)의 음악 경기에 심판관이 됐을 때 판의 피리소리가 더 좋다고 하여 승리를 선언하자, 아폴론은 그에게 당한 모욕을 씻기 위해 그의 귀를 당나귀의 귀로 변하게 하는 벌을 내렸다.

그의 부끄러운 당나귀 귀는 두건을 쓰고 다녀 감출 수 있었으나 그의 이발사만은 속일 수 없었다. 이발사는 이 비밀을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참을 수도 없어서 땅을 판 후 그곳에 대고 ‘미다스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친 뒤 흙으로 덮었다.

그 후 그곳에서 갈대가 자라나 바람에 나부낄 때마다 판의 피리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듯이 갈대는 ‘미다스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를 쉬지 않고 냈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서 님프인 시링크스(Syrinx)가 판에 쫓기다가 갈대로 변신했는데, 판이 갈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갈대는 이 이야기에서 음악의 상징이 됐다.

다른 이야기의 그리스 신화에서 외눈박이의 거인 폴리페모스(Polyphemos)는 바다의 신 갈라테이아(Galateia)를 사랑했다.

어느 날, 갈라테이아가 목동 아키스(Acis)의 가슴에 안겨 있는 것을 본 폴리페모스는 질투에 못 이겨 돌로 아키스를 죽였다.

갈라테이아는 아키스를 흐르는 강물로 만들고 강변에 서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갈라테이아의 팔이 길게 뻗고 어깨에서 녹색 가지가 나와 갈대가 됐다.

갈대는 작은 배를 만들거나 연료로 썼다. 옛날에는 연료나 지붕을 이는데 썼으며, 이삭자루는 빗자루를 만들 때에 이용했다.

줄기는 발이나 삿자리를 만들거나 펄프 원료로 사용했다. 또한 갈대잎으로 풀잎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했다. 껍질은 태워 그 습기에 대한 반응으로 사계의 기후를 알아냈다.

어린 순은 죽순이라 하여 요리의 재료로 썼다. 한방에서는 땅속의 뿌리줄기를 진토(鎭吐), 소염(消炎) 등에 썼다. 한편 갈대의 꽃말은 깊은 애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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