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총선, 여성이 사라지다.
19대 총선, 여성이 사라지다.
  • 김경희(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 승인 2012.04.14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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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각 정당들은 공천과정에서부터 무쇄신, 무원칙, 무감동으로 국민들에게 비아냥을 사더니, 선거운동과정에서도 자정능력을 상실했다. 정책과 공약은 사라지고, 흑색선전만 난무한다.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주도할 수 있는 인물, 사회적 약자들의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들은 후보로 나서 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았다. 깨끗한 정치와 투명한 사회운영에 기반한 정치를 실현하는 데 한 몫을 해낼 수 있는 여성정치인들은 지역구의 진입장벽을 넘지 못하고 공천심사에서 탈락했다.

여·야 모두 이번 총선 공천 초반에는 여성공천 할당제를 도입하며 여성공천 비율을 늘리겠다고 공언했지만,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조차도 민주·개혁 진영의 총선승리를 위한 ‘야권연대’에 치중하면서 여성후보를 적극적으로 챙기지 못했다.

‘지역구 30% 여성 공천’을 목표로 했던 새누리당은 전체 후보자 230명 중 7.0%인 16명으로 전체 여성 비율 평균에도 못 미쳤다. 15%를 여성으로 공천하겠다던 민주통합당은 전체 210명 중 21명(10%)이었고, 통합진보당은 55명 중 8명(14.6%)으로 비율로는 높은 편에 속했다. 자유선진당은 전체 52명 중 3명(5.8%)만 여성이었다. 여·야 여성 후보 간 대결을 펼치는 곳도 적지 않아 여성 지역구 국회의원 수 자체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50% 여성할당을 강제하면서 남녀교호순번제라는 제도 개선을 통해 여성의 정치진입이 가능하도록 한 것은 여성정치참여확대에 큰 진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민주정치 발전에 바로미터가 되는 여성정치인 지역공천 30% 할당은 권장사항 정도로만 여겨지는 각 정당의 구호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공천에서만 여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정책분야도 마찬가지다. 각 정당이 제시한 ‘여성정책’관련 공약을 보면 일자리, 돌봄, 인권, 보육 등 분야별 정책과 사업에 대한 계획은 있으나 차별의 해소를 통해 평등한 젠더관계를 실현하려는 성인지적 관점이 부족해 보인다. 단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라는 좁은 의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노동, 복지, 인권의 삼각 구도에 놓여있는 한국 여성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는데 미흡하다. 대부분 공약이 여성노동, 여성폭력, 이주여성·한부모, 보육, 일·가정 양립, 여성건강 관련 부문별로 응급조치를 통해 당면과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한 내용이다.

19대 총선에서 각 정당이 내놓은 여성관련 공약을 통해서는 여성정책을 추진하는 각 정당의 관점을 알기 어렵다. 정책 환경의 변화로 저출산, 고령화,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성 경제활동 급증을 정책에 반영하면서도 성인지적으로 통합된 관점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경제활동 참가를 통한 고용율 증대의 목표가 여성들에게 일·가족양립이라는 이중역할만 부여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된다. 여성을 정책대상으로 하는 일자리 정책, 휴가정책과 아울러 남성의 성역할 변화와 가족 내 돌봄 책임에 대한 공유를 꾀하는 적극적인 정책을 포함해야 한다.

여성정책의 최종목표는 여성과 남성이 사회와 개인의 삶을 형성하는 동등한 권력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권력과 영향력의 동등한 분배, 남성과 여성의 경제적 평등, 보살핌과 가사의 동등한 분배, 권력관계에 의한 폭력의 종식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각 정당들은 총선이후 성평등 정책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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