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안전해야 세상도 안전하다’
‘여성이 안전해야 세상도 안전하다’
  •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 승인 2012.04.27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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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발생한 소위 ‘수원 여성 토막살해 사건’이라 불리는 끔찍한 일은 경찰의 미온적이고 안일한 대응으로 빚어진 참사였다는 사실에 국민적 불안과 분노가 높아가고 있다. 귀가하던 20대 여성이 낯선 사람에게 납치돼 극도의 위협 속에서 112 신고전화를 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은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며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절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 끝내 처참하게 살해되도록 방조했다는 책임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사건해결보다는 축소와 은폐로 일관된 경찰의 거짓말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국민적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경찰은 “112 신고가 15초 정도로 짧아 신고장소를 알아내기 어려웠다”, “신고 장소가 특정되지 않았다”, “신고접수 직후 상가와 불 켜진 주택을 탐문 조사했다”, “119와 연계하여 위치를 파악했다”고 말하는 등 수사에는 마치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발표했다.

그러나 신고시간은 7분이 넘었고, 신고자는 특정위치를 말했고, 주변 탐문 수사는 없었으며, 유족에게 119에 직접연락 하라고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 신고전화를 경찰이 먼저 끊었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국민적 분노가 높아가고 있다.

거기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피해자 보호조치 소홀 등 인권침해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진행 중인 직권조사를 위해 경기경찰청에 진실규명을 위한 핵심 자료인 피해자의 112신고 녹음파일을 요구했지만 경기경찰청은 계속제출하지 않고 거부하고 있다. 
 

경찰은 사건 해결보다는 자신들의 지위와 자리보전을 위해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려 하고 있다는 불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번 사건의 심각성과 국민여론을 감안하고 선거라는 정치적 시기를 고려하여 사건발생 직후 발 빠르게 조현오 경찰청장이 자진사퇴한 것으로 무마하려 해서는 안 된다.경찰의 범죄 신고에 대처하는 방식과 시스템에 대한 점검을 통한 개선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찰의 여성폭력에 대한 인식개선이다.

7분이 넘는 112신고 녹음파일 중 1분 20초 정도 공개 된 내용을 통해 경찰의 여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문제도 드러났다. 음성파일에도 있듯이 부부싸움인 것 같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점, 수사 발표 시에도 “단순 성폭력 사건인 줄 알았다. 부부싸움 인 줄 알았다”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에서 국민의 안전을 담보해야 할 경찰들의 인식 속에 여성들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여성들은 분노하며 극도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이번 사건도 경찰들이 여성폭력에 대한 안일한 태도와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초동대처는 달라졌을 것이고, 그 여성은 안타깝고 처참하게 살해되지 않았을 것이기에 더 절망스럽다.

해마다 폭력으로 살해되는 여성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이에 대한 경찰의 통계 하나가 제대로 없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 문화에 대한 의식 변화가 함께 진행되지 않고 위치 추적 등 사생활과 인권침해 논란을 가지고 있는 즉자적이고 형식적인 대책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가정, 거리, 직장 등 생활공간 전체를 여성의 입장에서 재구성하고, 여성폭력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넘어 여성이 안전하게 살 권리인 ‘안전권’으로 확대해야 한다.

여성의 안전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경찰뿐 아니라 국가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수립되고 이행되어야 한다.
사건이 보도되고 난 이후 많은 여성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공간을 축소하며 공포스러워 하고 있다. 딸들의 귀가를 염려하며 온 가족이 불안 속에 긴장 속에 지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함께 깨달아야 할 일은 여성이 안전해야 모두가 안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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